“정치권에 정치가 없다.”
사립학교법을 둘러싼 여야 대치가 보름을 넘겼지만 아무런 해법도 찾아내지 못하는 정치권을 향해 쏟아지는 지탄이다. 정치력 없는 정치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협상, 타협, 조율이란 단어가 사라진 국회에는 상호 비난과 대결만 있을 뿐이다.
여야 간 협상창구는 문이 닫힌지 오래다. 한나라당 임태희 원내수석 부대표는 “(여당쪽에서) 가끔 전화 와서 ‘언제 들어 올거냐’고 묻는 게 고작”이라고 전했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도“사학법 협상은 이미 원내대표단의 손을 떠났다”고 했다.
공식 협상 창구가 막히면 어김없이 등장하던 게 이른바 ‘비공식 채널’이다. 지난해 말 국가보안법 등 4대 입법을 놓고 여야가 대치할 당시만 해도 여야 중진들이 개별 접촉을 갖고 나름의 출구를 모색했다. 이런 막후 대화는 여야의 충돌을 막는 완충장치의 구실도 했다.
하지만 이번엔 이 같은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있었다면 열린우리당 장영달 의원이 최근 야당 중진 의원들에게 만날 것을 제의했지만, 거부 당한 게 전부다. 만나자는 제의를 받았다는 한나라당의 한 3선 의원은 “만나 봤자 여당의 들러리만 되고 괜히 당내에서 괜한 오해만 받을 게 뻔해 거부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3선 의원도 “작년 4대 입법 대치 당시 우리당 이부영 의장과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가 물밑 협상 벌였지만, 오히려 궁지에 몰렸다”며 “그런 것을 보고 누가 막후 접촉에 나서겠느냐”고 말했다.
예전만 못한 중진들의 입지도 문제다. 개별 접촉 결과를 들고 각 당에 돌아가도 제대로 관철하기 어렵다. 한 여당 중진 의원은“지도부가 힘을 실어주지도 않고, 중진의 말이라고 귀 기울여 들어주는 사람도 별로 없다”고 토로했다.
여당의 포용력도 문제다. 국정을 이끌어가야 할 여당은 대치 국면이 보름을 넘도록 이렇다 할 협상카드를 내놓지 않았다. 사학법 찬반 여론조사 결과를 앞세우며 한나라당 압박하기만 즐긴 인상이다. 때문에 한나라당 내 등원론자들이 설 땅을 잃었다.
최근 한나라당 의원들의 국회 의장실 점거 당시 벌어졌던 광경은 정치 같지 않은 정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김원기 국회의장은 이후 의장실을 한번도 찾지 않았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김 의장을 ‘이미 죽은 몸’ 등의 표현으로 원색 비난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지금의 여야 대치는 정치행위를 넘어 ‘감정 대 감정’이 맞부딪히는 구조”라고 평가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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