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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39) 신희섭 KIST 신경과학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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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39) 신희섭 KIST 신경과학센터장

입력
2005.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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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이다. 추운 겨울에 학교에 가면 따뜻한 매점 난로 가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누구나 어려울 때니까 차가운 양은도시락이 전부였다. 그럴 때 학교에서 힘을 쓰는 고등학생 '어깨'들이 매점에 들어오면 주인 아주머니한테 "쟤, 따뜻한 국물 좀 주세요"라며 챙겨주었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그들의 마음씀씀이에 감사하면서 나는 그들이 머리는 안 좋아도 마음은 참 좋구나, 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두뇌연구를 계속한 지금, 나는 그 때의 내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깨닫는다.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도 실은 두뇌에서 내리는 정보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좋은 것은 머리가 좋은 것이다. 그들은 마음두뇌가 아주 좋은 친구들이었다.

나는 뇌를 공부하는 사람이다. 학술적으로는 학습 및 기억에 관한 유전학적 연구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이 하는 모든 동작, 말을 하건 그림을 그리건, 아니 겉으로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숨만 쉬더라도 이 모든 행위는 뇌가 기능을 해서 이뤄진다. 한석봉의 어머니가 어둠 속에서 떡을 썰거나 피아니스트가 보지 않고 피아노를 치는 것도 손에 익어서가 아니라 뇌, 즉 신경이 익혔기 때문에 가능하다. 손가락을 두 개만 가져도 신경이 살아있으면 피아노를 칠 수 있지만 손가락이 다 있어도 신경이 죽으면 피아노를 칠 수 없다.

인간의 모든 신체는 뇌로 연결되어 있고 뇌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개체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받아서 분석하고 판단을 내려서 다시 정보를 내려 보내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뇌이다. 새로운 경험을 했을 때 그에 따른 정보를 갈무리하는 것이 기억이라면, 그 기억을 토대로 하여 대처법이 달라지는 것을 학습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하는 공부는 이런 뇌의 기능을 유전자 수준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유전자가 뇌세포 기능을 변화시키면 뇌신경회로가 변화하고 행동이 달라진다. 뇌세포에는 30만개 이상의 유전자가 들어있는데, 이들 고유의 기능을 파악해서 뇌의 기능을 보완해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내가 하는 연구이다.

가령 겁이 많은 것은 어떤 유전자 때문인지를 파악하면 그 유전자의 기능을 보완하는 약물을 만들어 늠름한 사람을 만들어줄 수도 있을 것이며, 어떤 유전자가 기억력이나 통증에 관여하는가를 알게 되면 기억력을 높여주고 통증을 완화시켜주는 것도 가능해지게 된다. 인간의 뇌에 대해서는 아직도 너무나 많은 분야가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은 기차 소리 아련하게 들리던 시골이었다. 논과 밭이 고루 있고 마을 앞으로는 개울이 흐르고 뒷편으로는 언덕이 있는 동네는 어린 아이가 뛰어 놀기에는 그만이었다. 놀다 보면 친구들과 개구리를 잡아다가 해부를 한 적도 있지만 그저 어린이 장난이었을 뿐 생물이나 의학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의과대학에 간 것은 주변 어른들이 좋다고 해서였다. 어머니를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평산 신씨 18대 종손으로 외아들이었다. 한국전쟁에서 아버지가 전사하셨을 때 겨우 한 살이었다. 홀로 남으신 어머니를 위해, 그리고 집안을 위해 항상 모범적이고, 뭐든 잘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공부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런데 본과 4학년이 되어 회진을 따라 도는데 환자의 아픔이 내 아픔처럼 절절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의사로서 병든 인간의 처지를 개선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지만 그게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는 것으로 이뤄지는 것은 어쩐지 내 역할이 아닌 듯싶었다. 대신 본과 2학년 때 신경해부학 수업에서 처음 본 두뇌에 끌렸다. 치료하는 의사보다는 연구하는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공부는 별로 힘들지 않았는데 늘 어머니와 집안에 대한 부담이 떠나지 않았다.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가, 어머니를 혼자 두고 유학을 가는 것이 옳은가, 등의 고민을 하도 하다가 마침내 나는 '인생의 생각은 그만 하고, 인생을 살자'고 결심하고 1978년 미국으로 떠났다. 그때부터는 고민 없이 오로지 살기에만 몰두했다. 공부가 그대로 삶이었다. 처음에는 면역학을 하다가 생명의 기본원리는 유전학에 있음을 깨닫고서 발달유전학으로 학위를 받았다.

유전학적 기법을 두뇌연구에 접목해야 한다는 생각은 포항공대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주변에 좋은 절이 많아서 절을 자주 찾았더니 선배 한 분이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이라는 책을 보내주었다.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는데 유전학자의 눈으로 보니 그것이 전부 뇌에 관한 이야기였다. 인간이 어떻게 사유하는지, 어떤 경로를 거쳐 행동에 이르는지, 잘못된 행동을 차단할 수 있는 치료법은 가능한지 등 인간의 궁극적 고민을 과학자로서 밝혀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종교가 수행을 통해 마음(뇌)에서 이는 고통을 면해보고자 한다면, 뇌의 유전학적 연구는 유전자의 기능을 파악함으로써 각 유전자를 통제해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 그래서 달라이 라마는 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신경과학회 초청강연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불자들은 마음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힘들게 수련한다. 당신들은 기술개발로 마음의 괴로움을 없애는 약을 개발해준다면 감사하겠다. 단, 다른 기능을 건드리지 않고서 말이다." 과학이나 약물의 부작용이 없기는 힘들다는 말인데, 수행이 힘들기도 마찬가지이니 불교에서 완성에 이르는 방법으로 선(禪)과 교(敎)를 다 인정하듯이 사람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방법도 종교적인 수행과 과학을 병행하면 더 빨리 더 나은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생쥐를 통해 학습 및 기억에 관한 실험을 하다 보면 인간의 뇌에 대해서 좀더 분명히 알게 된다. 우선, 두뇌는 분명 타고나지만 훈련을 하면 좋아진다. 똑똑한 쥐는 미로를 빨리 파악하지만 둔한 쥐도 계속 훈련을 시키면 언젠가는 미로에서 길을 찾는다. 그리고 훈련을 시키면 시킬수록 미로를 찾는 시간은 짧아진다. 따라서 교육과 학습을 통해 유전적 결정론은 극복할 수 있다. 유전적 차이는 존재하지만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타고난 유전자는 내가 더 이상 알 바가 아니고 후천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내가 손을 쓸 수 있다. 영화 '가타카'가 생각난다.

최근 우리 실험실의 연구 결과, 미로 학습에는 재주가 없는 생쥐에게 운동 학습을 시켰더니 운동 학습에 대한 지능은 빨리 높아졌다. 이 생쥐는 운동 두뇌가 남달리 뛰어난 생쥐이다. 이처럼 사람도 저마다 뛰어난 분야가 다 다르다. 하늘 아래 인간이 다 평등하다, 사람 하나하나가 부처라는 말이 다 옳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머리가 뛰어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운동이나 예술이나 감성이 풍부한 두뇌를 가진 사람도 있다. 심지어 많은 기능이 다 떨어진다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사람조차, 그가 마음이 아주 착하다면 그 사람은 그 기능에 해당하는 두뇌가 아주 뛰어난 것이다. 예전에는 오로지 학교 공부와 연구를 잘하는 것을 머리 좋다고 보았지만 지금은 무엇이든 자신과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뛰어나게 잘 하면 머리가 좋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생명계에 두뇌가 나타난 것은 좌우대칭형으로 몸의 형태가 진화하면서부터이다. 해파리처럼 둥근 것은 방향을 판단할 필요가 없다. 다른 생명체와 부딪쳐 위협에 처했을 때에 대처하기 위한 정보 확산에는 신경망 정도로 족하다. 그러나 좌우대칭형이 되면 좌로 움직여야 할지 우로 움직여야 할지 판단을 해야 한다. 판단을 하려면 정보를 토대로 분석하고 학습이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뇌라는 것이 생명계에 나타났다.

뇌는 다세포 동물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최적의 방안을 찾아내기 위해 생겨났고, 생존과 번식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이는 개체에만 국한된 목표가 아니다. 생명계에서 가장 복잡한 인간의 뇌는 인간의 생존과 번식의 조건이 그만큼 복잡해졌다는 의미가 된다. 너무 복잡해지다보니 때로는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안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약물 중독, 과도한 공격성 등이 그 예이다. 뇌 연구는 이런 복잡함에서 생겨난 오작동을 줄이고 본래의 뇌의 상태를 회복하게 하려는 연구일 수도 있겠다.

홀로 되신 어머니께 잘해드려야 한다는 부담이 무의식적으로 나의 마음 바탕에서 항상 무게를 차지하며 나의 정서를 좌우하던 것이 멈춘 것은 최근 몇 년 전이다. 나는 그것이 나의 마음공부의 결과로서, 내 힘으로 된 줄 알았더니, 실은 어머니의 공덕임을 최근에 깨닫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어머니께서 스스로 여여히 그리고 담담히 인생을 걸어가시고 계신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의식으로는 몰랐지만 무의식은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깨달음은 어떤 유전자에서 파악하는 것일까. 뇌 연구는 곧 나 자신의 마음 연구이다. 나의 일상이 곧 뇌 연구이다.

■ 신희섭 센터장은 누구

신희섭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신경과학센터 책임연구원은 유전학을 활용한 뇌과학 연구에서 세계적인 전문가로 꼽힌다.

간질과 운동마비 증상에 관련된 유전자를 최초로 발견했으며 학습, 생체 시계에 관한 유전자를 규명하고 복통을 조절하는 유전자의 기능을 밝혀내, 네이처와 사이언스 등에 한 해에 주요 논문 세편이 실리기도 했다.

황우석씨 사건으로 충격은 받았지만 한국의 생명과학계가 여전히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자신감도 그 덕분에 건재할 정도이다.

1950년 경기 의왕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의대와 대학원을 거쳐 미국 코넬대 의대에서 유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졸업논문은 최우수논문상을 받았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를 거쳐 91년부터 포항공대 교수를 지냈다.

더 많이 연구하기 위해 처우가 좋은 교수직을 버리고 2001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한탄상 금호학술상(1997) 호암상 듀폰과학기술상(2004)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2005)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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