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정 판결 18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해 ‘사법살인’으로 불려온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원회 사건’이 30년 만에 다시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3부(이기택 부장판사)는 27일 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관련, “1974년 비상보통군법회의에 의해 선고된 15,16호 판결 중 우홍선, 송상진, 서도원,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도예종씨에 대한 부분과 14,17,18호 판결 중 여정남씨에 대한 부분에 대해 재심을 개시한다”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수사 과정에서 피고인들이 수사관과 경찰관들로부터 몽둥이 등으로 구타를 당하고 물고문, 전기고문을 받는 등 폭행 및 가혹행위를 당한 사실이 인정돼 수사관 등의 독직폭행죄가 증명됐다”며 “이는 형사소송법이 정한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형소법 420조 7항에 따르면 원판결의 기초가 된 조사에 관여한 법관, 공소의 제기 또는 그 공소의 기초가 된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증명된 때 재심을 개시할 수 있다.
이 사건의 경우 독직폭행죄는 공소시효가 5년에 불과해 확정판결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에 해당되지만, 그럴 경우 그 사실을 증명하는 것만으로 재심을 개시할 수 있다고 형소법은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일부 수사관, 피고인들이 수용됐던 구치소 교도관 등이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한 진술에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며 “피고인들이 범죄 사실을 자백한 시기에 중대한 증거가 발견됐거나 특별한 사정이 나타나지 않은 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백이 늘어나고 구체화된 점 등에 비춰보면 가혹행위 외에 자백할 만한 다른 사정이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재판 관할권에 대해 “피고인들은 대통령 긴급조치에 따라 설치된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았지만 긴급조치가 효력을 잃어 일반 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결정했다.
피고인 유족들은 2002년 9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고문에 의해 조작됐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자 같은 해 12월 서울중앙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형사사건 재심의 경우 검찰이 3일 이내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심리가 시작된다. 검찰은 “법원 결정을 살펴본 뒤 항고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최영윤 기자 daln6p@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