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는 올해 내수부진에다 고유가 등 해외 악재가 겹치면서 고전을 거듭했다. 지난해 4.6%를 기록했던 경제성장률은 올해 3.9%(잠정치)로 뚝 떨어졌다. 올해 가계부채가 447조 원으로 급증한 것을 보면 400만 명에 달하는 신용불량의 본질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8ㆍ31 부동산 대책으로 아파트 가격이 안정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400조 원이 넘는 유동자금이 줄기는커녕 늘고 있는 현실을 보면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불안하다. 청년실업도 계속 늘어났고,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은 해외로 이전하거나 줄줄이 무너져 내렸다.
해마다 이맘때면 여기저기서 다음해 경제성장 전망치를 내놓는다. 한국은행과 재정경제부가 내놓은 내년도 우리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5% 전후이다. 내년의 형편이 올해보다는 나아질 것이며, 특히 내수의 증가와 수출의 지속이 이를 가능케 하리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5%는 겨우 잠재성장률 수준이며, 현존하는 실업을 흡수하는 데에 최소한으로 필요한 성장률 7%에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다. 게다가 5%의 달성도 그리 낙관적이지 못하다.
우선 내수의 증가는 구매력 증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너무 오래 안 쓰고 참아온 끝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반작용일 가능성이 크다. 무리한 국책사업을 벌이고 그 재원 마련을 위해 올리기만 하는 세금이 내수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 중소기업의 몰락은 내수침체의 직격탄이다. 경기를 견인할 만큼 충분하고 지속적인 내수증가를 기대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더 치명적인 이유는 그동안 지속된 투자 부진이다. 우리 경제가 5% 수준의 잠재성장률을 유지하려면 연평균 7% 상당의 총투자 증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총투자는 2001년 이래 2~4% 늘어나는데 그치고 있다. 이에 따라 그간의 수출 증가세를 유지하는 것도 그리 간단치 않아 보인다. 산업은행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의 투자는 다소 증가하였지만 중소기업 투자는 2004년에 이어 올해에도 10% 이상 감소하였다.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이 별로 없다. 내년 경제를 살리지 못하면 낙오할 판이다. 아시아 개발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의 내년 성장률 5%는 동아시아 신흥 개발 10개국 평균치 7.2%를 훨씬 밑도는 수준이며, 10개국 중 가장 낮은 필리핀(4.8%) 다음이다. 중국(8.9%)의 약진도 우리에게 큰 부담이다.
내년에 정부는 경제 살리기에 무조건 올인 해야 한다. 경제 상황을 정치 입맛에 따라 과장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연초에 대통령이 임기 내 연 6% 성장을 공언했고, 재경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화답했었는데 결국 거짓말을 한 꼴이다.
정책 당국 고위층들의 무책임한 장밋빛 과장은 국민의 경제의식을 오도하고 정책 실무자들의 무리수를 부추겨 경제를 골병들게 한다. 참여정부 내내 저질러온 실수이고 그 결과는 우리가 겪고 있는 극심한 불황이다. 한은과 재경부가 발표한 내년의 5%에도 정치적인 거품이 끼어있다.
더 중요한 것은 경제가 선거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내년 5월 지방선거는 우리 경제를 불구자로 만들 수 있는 독약이 될 수도 있다. 지지율 저조의 위기감에 정부 여권은 복지를 늘려 국민의 환심을 사는데 몰두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상당기간 비용의 30%밖에 건지지 못할 것이라는 호남고속철을 앞당겨 착공하는 것이 바로 선거 경제의 조짐이다.
선거결과에 따라 정계 개편, 개헌 논의 등 정치권이 소용돌이칠 가능성도 크다. 그리되면 경제는 내년 내내 이판사판의 정치권 이전투구에 휘둘리게 될 것이다. 올해처럼 경제에 올인 한다면서 정치에 올인 하지 말고 내년에는 경제를 선거판으로부터 굳건히 지켜내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노영기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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