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관한 논의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사회에 대한 기여가 경영의 부차적인 자선활동으로 이루어지다가 언제부턴가 중장기 이윤 확보를 위한 경영전략으로 여겨지고 있다. 최근 3세대 담론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부 역할의 한 축을 기업이 적극적으로 분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체 고용의 4분의 3 이상을 차지하면서 혁신의 원천인 중소기업도 사회적 책임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제 중소기업도 법을 지키면서 이윤을 극대화하는데 그쳐선 안 되며 환경을 보전하고 지역사회, 노동자, 소비자를 포함한 이해관계자의 이익 증진에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문제에 가장 앞서가는 유럽연합(EU)은 2002년에 사회적 책임을 중소기업 부문에 확대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글로벌 브랜드를 가진 다국적 기업들은 납품ㆍ하청 관계에 있는 우리 중소기업들에 사회ㆍ환경 기준의 철저한 준수를 요구한 지 오래다. 국제 무역규범은 경쟁, 환경, 노동 라운드에 이어 윤리 라운드로 진전될 전망이다. 이미 벨기에는 2001년에 개발도상국이 자국에 수출하는 제품에 대하여 노동기준 준수 표시를 의무화하는 법률을 제정하였다.
폐기물 관리, 에너지 절약, 그리고 고용 평등의 사회친화 경영이 비용절감과 매출확대를 통하여 이윤을 늘렸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해외 진출 중소기업의 열악한 노무관리는 개별 기업의 현지화 실패에 머무르지 않고 국가 브랜드에 치명적 손상을 끼칠 위험이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요청된다고 하겠다.
중소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해서는 다국적 기업이나 대기업에 적용되던 잣대를 그대로 들이댈 수 없으며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은 경제력이 넉넉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고 글로벌 브랜드나 전국적 명성도 없어 자율적으로 이를 하려는 인센티브도 미흡하다. 따라서 일방적 요구보다 정책 지원과 제도적 장치가 긴요한 것이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유럽 중소기업의 절반, 우리 중소기업의 35% 정도가 사회적 기여를 이미 실행하고 있다. 따라서 우선 과도한 부담이 되지 않도록 기존 활동을 사회적 경영으로 체계화하여 효과성을 높이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중소기업은 규모나 여건의 다양성을 감안하여 책임의 덕목이 단계적, 유형별로 적용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이 수립되어야 한다. 특히 중소기업 지원기관에 CSR 정보센터를 개설하여 중소기업에 적합한 모범사례의 보급과 경영 성과에 대한 연구도 시행하여야 한다. 중소기업이 간편하게 이행 실적을 문서화하여 홍보할 수 있도록 경영 매뉴얼이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여 제공하는 것도 유용할 것이다.
제약회사를 경영하는 한 중소기업인은 매년 사회복지시설에 약품을 수억 원어치씩 기부하는데 부가가치세를 별도로 납부해야 하는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공익재단을 별도로 설립할 수 있는 대기업과는 달리 중소기업의 실정에 맞는 세제지원 장치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해외에 진출한 소기업들은 CSR 클러스터를 형성하여 공동으로 현지화 노력을 전개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의 실정에 적합한 사회적 책임의 발전을 통하여 우리 중소기업이 성공경영의 지평을 넓혀 나갈 것을 기대한다.
최성호 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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