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그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희귀 난치병 환자들이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자라는 사실에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희귀 난치병 환자에 대한 비등한 동정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왜 그렇게 황 교수의 연구에 열광했는지에 대한 원인 진단과 이들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대책 논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희귀 난치병 환자들은 또 다른 신기루를 좇아 열광하고, 다시 좌절하는 뼈아픈 경험을 계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적지 않은 수의 희귀 난치병은 ‘첨단’ 의학 기술이 아니라 ‘보통’ 의학 기술만으로도 질병의 고통을 큰 폭으로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희귀 난치병 환자들은 탁월한 치료 효과가 입증되어 이미 상용화된 의약품과 시술조차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회적 관심과 제도 개선을 통해 희귀 난치병 환자를 도울 수 있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2005년 현재 6,500여 명 수준인 골수 기증 서약자를 10만 명으로 늘리면, 골수 이식이 필요한 대다수 혈액 질환자들에게 새 삶을 찾아줄 수 있다. 굳이 먼 미래의 막연한 희망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지금 당장 희귀 난치병 환자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것이다.
첨단 의학 기술이 인류 건강에 기여한 바는 매우 크다. 그러나 그 한계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미국 보건부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100년 동안 산업국가 국민의 평균 수명은 약 30년 연장되었는데 이 중 의학 기술의 발전이 기여한 몫은 5년에 불과하였다.
나머지 25년은 영양 상태와 주거 환경 개선, 개인 위생 향상, 생활 습관 변화 등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또 다른 최근 연구에서는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요인들 중에서 생활 습관과 환경이 차지하는 비중이 75%나 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주요 예상 수혜 대상자로 꼽히는 척추 손상 환자도 사고나 질병 같은 후천적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90%나 된다. 즉, 희귀 난치병을 포함한 상당수의 질병은 건강 친화적인 환경 조성과 예방 대책을 통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최근의 첨단 의학 기술이 상업적 목적의 ‘상품’으로 개발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주의 깊게 지켜볼 문제다. 자칫하면 의학 기술 개발이 시장성이 확보된 질환이나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있는 고급 의료에 편중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저개발국가에서 많이 발생하는 질환에 대한 의학 기술 개발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을 볼 때, 이 같은 우려는 단순한 기우(杞憂)가 아닐 수 있다.
상업적 이해에 전적으로 좌우되는 첨단 의학 기술 개발은 의료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합리적 의료 이용을 왜곡하는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첨단 의학 기술에 대한 맹목적 추종은 첨단 의학 기술이 인류 건강에 기여할 수 있는 본연의 가치마저 상실하게 한다. 독서망양(讀書亡羊). ‘장자’에 나오는 고사성어로 어떤 종이 책을 읽느라 돌보던 양을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다른 일에 정신을 팔다가 중요한 일을 소홀히 한다, 또는 지엽말단에 매달려 실체를 잃는다는 의미이다. 행여 화려한 첨단 의학 기술의 외양에 눈이 팔려 참된 생명의 인프라를 만드는 일을 간과했던 것은 아닌지 곰곰이 곱씹어 볼 일이다.
이진석 충북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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