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관련업체에 근무하는 30대 초반의 A씨는 최근 휴가를 내고 가슴 성형수술을 받았다. 빈약한 가슴 때문에 20대부터 콤플렉스에 시달려왔다는 A씨의 성별은 남성. 물론 성 전환을 위한 것은 아니다. 키 180㎝에 몸무게 74㎏으로 한 눈에도 훤칠한 미남인 그는 가슴근육이 발달하지 않아 엄청난 콤플렉스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의사의 진단은 일종의 근육발육 부진인 ‘폴란드 신드롬’. “헬스클럽도 다녀보고 별 짓을 다 했는데 가슴근육만 안 생기는 거예요. 남들은 완벽한 외모에 뭐가 걱정이냐고 하지만 내 속은 아무도 모릅니다. 여름에 쫄티 한 번 입고 돌아다녀 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 800만원을 들여 등 근육을 떼어다 가슴에 옮겨 심는 가슴재건 수술을 받은 그는 “남자라고 성형수술 받지 말라는 법 있냐”며 수술결과에 만족해 했다.
수술로 몸매 만든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점령한 ‘몸짱’ 열풍이 우리 주변의 평범한 남성들에게까지 전염됐다. 우람한 근육질에 대한 동경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성형수술을 해서라도 몸매를 교정하려는 젊은 남성들의 모습은 몇 년 사이 확연히 달라진 미의식과 세태를 드러내고 있다.
A씨와 반대로 여성처럼 비대한 가슴이 고민인 서울대생 B(25)씨는 올 4월 300만원을 주고 가슴 지방흡입 수술을 받았다. 청소년기 호르몬 불균형으로 나타나는 여성형 유방증은 특별히 신체 건강을 위협하지는 않지만 외관상 둔하고 남성적이지 못해 보이는 게 문제.
신장 181㎝에 체중 75㎏으로 보기 좋은 체형이지만 물렁물렁한 가슴이 고민이었던 L씨는 아버지에게 진지하게 고민을 털어놓고 수술비를 지원받았다.
“사우나는 고사하고 한여름에도 수영장을 못 가봤어요. 시원하게 웃통 벗고 바닷가에 놀러 다닐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내년 여름이 기다려집니다.”
서울 압구정동 엔제림성형외과 심형보 원장은 “요즘은 남성 의상도 여성의 클리비지 룩(cleavage look)처럼 가슴이 깊이 파이는가 하면 딱 달라붙는 민소매가 많아졌다”며 “남성들이 자연스럽게 상체를 드러내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10년 사이 무려 7배 이상 가슴성형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운동으로 다진 진짜 ‘근육맨’
한일수(38세ㆍ상암커뮤니케이션즈 아트디렉터 부장)씨는 6개월 전부터 헬스클럽 두 곳에 등록해 하루 세 번씩 운동을 하고 있다. 오전 7시 출근해 회사 옆 헬스클럽에서 1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점심에도 식사를 서둘러 마친 후 40분 가량 근육단련을 한다. 퇴근 후에도 집 앞 헬스클럽에서 1시간 정도 운동한 후 귀가하는 한씨의 하루 운동시간은 총 2시간 40분.
처음 한씨를 만나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안녕하세요” 다음으로 “몸 좋으십니다”라는 인사를 건넬 정도. 그가 운동에 투신하게 된 계기는 왜소한 체격에 대한 콤플렉스였다. 키 172㎝에 체중 58㎏이던 가느다란 몸매가 체지방 없이 근육만으로 75㎏까지 늘자 외모로 인한 열등감이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운동으로 점점 변해가는 제 몸을 바라보는 게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쾌감을 줍니다. 눈으로 보는 게 중요한 세상이잖아요. 남자도 예외가 아니죠.”
하루 일과가 운동으로 점철돼 있기는 회계사 강모(37)씨도 마찬가지. 회사 건물 지하에 있는 헬스클럽에 등록해 하루 세 번씩 총 3시간 근육단련을 하고 있다.
“운동을 하다 보니 애써 키운 근육이 망가질까봐 술자리도 피할 정도로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게 되요. 지금은 친구들이‘남자가 무슨 몸매관리냐’고 비웃지만 나중엔 그 친구들이 후회하게 될 겁니다.”
급증하고 있는 운동과 몸매관리 수요에 맞춰 헬스클럽의 운영 형태도 다양화하고 있다. 영화감독 이모(34)씨는 뱃살을 빼기 위해 새벽 2시까지 운영되는 서울 대치동의 한 헬스클럽에 다닌다.
“주로 낮에 자고 밤에 작업하는 편이라 운동도 밤 11시에서 12시 사이에 합니다. 그 시간에 누가 운동을 할까 싶은데 가보면 젊은 남자들로 바글바글해요.”
운동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젊은 남성들 덕분에 근육성장에 좋다는 각종 헬스보충제의 매출액도 급증했다. 헬스보충제 전문 K업체의 경우 2000년 6,000만원이던 매출액이 5년 만에 5배 이상 증가했다.
5개월 전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근육을 키우기 위해 ㎏당 7만6,000짜리 단백질보충제를 먹고 있는 회사원 C(31)씨는 “약효는 잘 모르겠지만 보충제를 안 먹으면 운동효과가 없을 것 같은 불안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인터넷도 몸매 열풍이 뒤덮고 있다. 운동 후 찍은 사진을 게시판에 올려 회원들의 품평을 받는 몸매 관련 남성전용 인터넷 카페는 이미 수백개에 달한다. 닭가슴살과 단백질 보충제를 먹으며 근육운동을 했다는 20대 후반 직장인 회원이 한 ‘몸짱카페’에 올린 사진에는 “균형이 잘 잡힌 편”“삼두근을 더 키우면 완벽해질 듯” 등 날카로운 논평이 줄줄이 달려 있다.
최후의 비상구 ‘비만클리닉’
비만클리닉이나 체형관리실도 더 이상 ‘금남의 집’이 아니다. 결혼을 앞둔 3년차 직장인 신모(30)씨는 3개월 전부터 서울 중계동의 한 비만클리닉을 다니고 있다.
운동 등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 살을 빼려 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던 그는 클리닉에서 처방해준 지방분해약 리덕틸을 복용하며 2달 만에 8㎏을 감량했다.
“제가 몸에 붙는 옷을 좋아하는 편인데 살이 좀 빠지니까 옷맵시가 확 달라졌어요. 무슨 옷을 입어도 라인이 사니까 이래서 살을 빼야 하는구나 싶더군요.” 신씨는 “요즘처럼 고급스럽고 세련된 이미지가 각광받는 시대에 날씬한 몸매는 기본”이라며 “남자 여자 구분하는 건 정말 낡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 성형비율 얼굴서 몸으로 급속 이동
1994~2003년 성형수술을 받은 남성 환자 394명을 분석한 엔제림성형외과의 조사결과는 남성 성형의 트렌드가 확실히 얼굴에서 몸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994년에는 코가 전체 성형의 36.9%로 1위였지만, 2003년 들어 50.0%의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한 여성형 유방증에 1위를 빼앗겼다. 엉덩이에 허벅지살을 이식하거나 실리콘 등 보형물을 넣는 엉덩이 확대술도 점차 비중이 늘고 있다.
엔제림 심형보 원장은 “많은 여성들이 엉덩이를 남성의 가장 섹시한 신체부위로 꼽고 있는 것이 이유”라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몸짱’ 연예인이 부상한 것과도 맞아떨어지는 변화”라고 말했다.
연세대 김현미(사회학과) 교수는 “완전고용에 가까웠던 부모세대와는 달리 젊은 남성들이 고용에 불안해 하고 사회구조적으로 무기력감을 느낄수록 자기 몸에 더 투자하고 있다”며 “사회는 바꿀 수 없지만 내 몸은 얼마든지 내 노력에 따라 변화 가능하고 그 결과가 개인의 경쟁력으로도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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