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 달러 위조 등과 관련해 대북 금융제재를 가하고 있는 미국은 한국측에 개성 공단 확장 등 대북 경제지원 및 평화체제 전환 문제를 비롯한 전반적인 남북관계에서도 속도조절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미국의 움직임은 6자 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 입장에서 북한에 대한 경제적 제재 등을 통해 핵 포기를 압박하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 데이비스 샘슨 미 상무부 부장관은 20일(현지시간) 미 워싱턴을 방문한 정동영 통일부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의 개성 공단 확장 계획에 대해 “한미가 강력하고 전략적인 양국관계에 입각해 협의해 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발언은 한국의 대규모 대북 지원으로 진행되는 남북간 개성공단 사업도 북핵 문제 해결의 틀 속에서 재검토돼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 로버트 졸릭 미 국무부 부장관도 정 장관을 만나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 문제도 북한 핵 해결 과정을 감안해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북한의 핵 폐기가 매우 어려울 것 같은 우려가 든다”면서 “북한이 실제 핵 폐기를 하겠다고 마음먹게 하는 것이 문제”라고 덧붙였다.
“한미동맹에 미칠 영향, 안보태세, 북한과의 경제 및 인적교류 문제 등을 모두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평화협정 체결이 속도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그는 또 “북한의 인권상황, 특히 어린이들의 영양 결핍 등이 북한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며 인권 카드도 여전히 유효한 압박 수단임을 분명히 했다. 일본 교도(共同)통신 등은 졸릭 부장관의 발언을 “한국의 대북지원을 축소해달라는 요구”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미측이 개성공단 확장 계획에 대한 미국의 우려는 “남북간 협력 및 무역과 안보 문제 사이에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는 언급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한국은 개성 공단이 결국 북한을 개혁ㆍ개방으로 이끌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으나 미국은 오히려 북한의 현금 확보능력을 높여 줌으로써 핵 문제 해결을 더디게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현재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는 20개 미만의 한국기업이 북한에 지급하는 임금은 월 35만 달러 수준이다. 그러나 2006년 말까지 300개 기업이 개성에 진출할 경우 미 강경파들은 점점 반대 목소리를 키워나갈 것이 확실시된다.
그러나 우리 정부도 개성 공단 확장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고 한반도 평화협정도 북핵 문제 해결에 병행해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한미 간의 이견은 남북관계 전반에 걸쳐 표면에 드러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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