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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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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폭설

입력
2005.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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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경험하는 극단의 공포는 뭘까. 고립감이 아닐까. 어린아이들은 부모에게서 떨어지지 않을까 잠재적으로 두려워하고, 학교 다니면서는 왕따 걱정을 하고, 사춘기가 되어서는 고립되어지지 않은 존재로서의 자신을 인정해주는 이성을 갈구하다, 어찌어찌 짝을 만나고 나서도 사회생활에서 고립되지 않으려 또 발버둥쳐야 하는 것이 우리 삶이다.

호남ㆍ서해안ㆍ제주 지역에 기상관측 이래 70여년만에, 주민들이 피부로 느끼기는 100년만에 내린 기록적 폭설로 마비된 호남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 남해고속도로에서 21일 오후부터 22일 새벽까지 14시간 가까이 갇혀있던 수천여대의 차량에 탄 사람들이 느낀 것은 극단의 고립감이 아니었나 짐작된다.

언젠가 남해에서 갑자기 몰려온, 문자 그대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때문에 바다 한가운데 오도가도 못하는 배 위에서 고립무원의 공포를 실감한 적이 있다.

몇 시간이 지나서야 예인선에 의해 배가 끌려나오고 육지의 불빛이 보였을 때 절로 감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모두 자연적 재난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이다.

이 달 들어 4일부터 무려 20여일 가까이 폭설이 이어진 호남지역 사람들의 심정은 한 마디로 ‘망연자실’이라고 현장의 취재기자들이 전해온다. 누적 적설량이 많은 곳은 2㎙ 가까이나 된다.

‘폭설 테러’ ‘눈 폭탄’ ‘백색 지옥’ ‘하얀 전쟁’ 등등 언론이 만들어내는 조어들도 하나같이 끔찍하기만 하다. 21일 35.2㎝의 적설량으로 역시 기존 기록들을 갈아치운 광주의 경우 퍼붓는 눈발로 시정거리가 채 10㎙도 안되면서 도시 기능이 완전 마비돼 버렸다.

하지만 농촌 지역이 더 문제다. 비닐하우스가 폭삭폭삭 내려앉고, 축사가 무너져 가축들이 아우성이지만 손을 쓸 수가 없다. 젊은 사람들은 그래도 급한 곳 눈이라도 치울 수 있지만 우리 농촌 사정이 그렇지 않다.

젊은 사람 다 떠나고 노부부만 남아 지키는 농가들은 쏟아지는 눈발을 그저 멍하니 쳐다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럴 때 농민들이 느끼는 것이 고립감이다. “이웃, 다른 마을과 고립되고 무서워서 하늘의 처분만 바라게 된다”며 “이래저래 죽어나는 것은 농민뿐”이라는 심정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피해액만 2,000여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액수는 집계가 되면 눈덩이처럼 더 불어날 것이다. 정부가 이번 폭설 피해지역에 피해액 3,000억원 이상일 경우 선포하는 특별재난지역에 준하는 지원을 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은 다행이지만, 아무리 동아시아 전역을 덮친 자연재해라 하더라도 20여일이나 계속된 폭설에 대한 대비를 왜 못했나 하는 문제는 남는다.

X파일 사건이 채 가시기도 전에 황우석 교수 파문이 났을 때 사회부 기자들이 우스개로 “한국은 참 신문 만들기 좋은 나라”라며 헛웃음을 웃었었다.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래킬 뉴스거리가 끊임없이 생겨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제 며칠만 있으면 또 한 해가 간다. 지난해말부터 계속된 수능 부정 사건에 이어 독도 파문, GP 총기 난사, 8ㆍ31부동산대책, 행정수도 이전 문제까지, 이즈음이면 10대 뉴스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지는 충격적 사건들이 여느해처럼 줄을 이은 한 해였다. 이번 폭설이 다른 것 말고 이런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 사람들 서로 고립시키는 우울한 소식들만 덮어버렸으면 한다.

하종오 사회부차장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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