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열흘 남았다. 올해 우리 사회에서 꼭 청산하고 싶은 것과 관련하여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진(晉)나라 왕도(王導)는 황제 다음가는 권력을 가졌던 사람이다. 언젠가 한번은 각 지역의 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하려는 취지에서 사람들을 파견해 시찰하게 하였다. 일종의 암행어사와 같다고 할까. 그들이 돌아와서 보고를 하는데 미주알고주알, 유언비어까지도 다 수집해 온 것이다. 사실 왕도가 내심 기대한 것도 이런 것이었으니 참으로 만족스런 보고였다.
그런데 고화라는 한 사람은 끝까지 이렇다저렇다 말이 없었다. 이상하게 여긴 왕도가 물었다. 그러자 고화가 대답했다. “공은 지금 천자를 보좌하는 자리에 올라있습니다. 그물을 성기게 만들어 큰 배가 지나갈 수 있도록 관대하게 정치를 해야 옳은 것이지, 어찌 풍문을 모아서 세세한 것을 캐가면서 정치를 어찌할 수 있습니까.” 왕도는 이 말을 듣고 크게 탄복했다.
정치를 하면, 남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사석에서는 나를 어떻게 말하는지 듣고 싶은 충동이 생기나 보다. 사실 남들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면 번거롭게 도청할 필요가 없다. 아주 손쉬운 방법이 있다. 직언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있을 포용력만 있으면 된다.
춘추시대 조간자라는 대신 밑에 주사라는 신하가 있었다. 그는 조간자의 귀가 아프도록 직언하는 신하였다. 그런 주사가 죽고 난 뒤 조간자는 우울해 졌다. 그의 기분이 안 좋아 보이자 아랫사람들은 서로서로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나 걱정하며 마음을 졸였다. 조간자가 이유를 말해주었다.
“아니다. 너희한테 무슨 잘못이 있는 게 아니다. 양 천 마리의 가죽이 여우 한 마리의 액(腋)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던가. 여러 신하가 조정에서 일하고 있지만, 모두 내 말에 예, 예라고 대답할 뿐이다. 주사와 같이 기탄없이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없어서 잠시 우울한 생각이 들었다.” 액은 여우 옆구리 밑의 털로 순백색이다. 아주 귀하게 여겨졌다.
아랫사람에게 잘못을 지적당해 유쾌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렇지만 ‘예스맨’만 활개친다면 어떤 조직도 내부로부터 와해할 것이다.
요새 같으면 조간자도 역시 도청의 유혹에 시달렸을지 모르겠다. 어찌됐건 그 많은 도청 자료들은 정권을 연장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다. 번거롭고 구차한 방법을 쓰지 말고 멋지게 라이벌과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새해가 되길 바란다.
박성진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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