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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음식 - 박재은의 음식이야기 - 맛있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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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음식 - 박재은의 음식이야기 - 맛있는 여행

입력
2005.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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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 철도가 개통되고 나서 나만큼이나 신이 난 이가 또 있을까.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 같은 토박이에게 고속으로 달리는 기차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었다.

서울에서 전주까지 2시간 반, 부산까지는 2시간 40분, 목포까지 3시간, 목포에서 차를 갈아타면 땅 끝까지 4시간으로 해결된다. 서울 토박이가 전국을 누비게 되고 나니, 눈에 보이는 식재료가 끝없이 늘어나 ‘요리사’라는 직업에 한 몫을 톡톡히 더함은 물론.

♡ 부산-돼지 국밥

부산 하면 떠오르는 먹거리가 여럿 있겠지만, 내게는 돼지 국밥이 최고다. 술에 재워서 잡내를 없앤 돼지 사태와 뼈를 큰 솥에 담고 물을 부어 하루가 넘게 끓이면 곰탕을 닮은 뽀얀 국물이 우러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돼지 국밥이다.

경상도를 제외한 지방에서는 주로 국밥을 소고기로 만들지만, 소고기로 만든 국밥이 경상도에서는 ‘장국밥’이라 따로 불린다. 바닷 바람이 쌀쌀한 부산의 어느 시장을 어슬렁거리다가 김이 모락 나는 밥집에 들러 국밥 한 그릇에 알이 굵은 깍두기를 떡하니 받고 나면 부자 되는 기분이다.

느끼함은 전혀 없는 담백한 국물이 구수하고, 쫀득하게 익혀진 살코기는 씹는 맛이 최고다. 국밥이라기보다 맑게 끓인 수프에 가까울 정도로 기름을 싹 걷어 낸 뽀얀 국물은 국제화를 시킨다 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 메뉴다. 전날 잡어회에 소주라도 곁들였다면 더없이 고마울 맛이고.

♡ 완도-땡초

완도군은 전남의 서남쪽으로 흩어져 있는 200여개의 섬들을 묶어 말하며, 이 중 가장 큰 섬이 완도읍이다. 장보고나 윤선도 같은 옛 어른들이 아끼던 섬으로 유적지도 많을 뿐더러 그 아름다운 자연 경관은 먼 길을 찾아 온 나그네에게 큰 위안이 되어 준다.

지난 가을 완도를 찾았을 때 허기에 절어 들른 횟집, 매운탕에 녹는 듯 익은 생선살을 큰 술로 떠서 밥 위에 올려 정신없이 먹었다. 뭐 주인장이 낚시로 잡은 생선으로 매운탕을 끓였으니 그 맛에 모자람이란 없었지만, 기름진 국물과 찰진 밥에 포인트를 찍어주는 반찬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땡초’다.

청양 고추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라고 하는데, 특히 반 인치 남짓한 자잘한 크기의 땡초가 입맛을 당겼다. 삼십년 전 경상도에서 완도로 시집을 오셨다는 주인 아주머니가 만들어 주신.

간장 양념에 조청을 섞어 넣어 맞춘 간이 그만인데다가, 그것을 다시 살짝 삭혀서 나오는 새콤한 맛이 얼얼하게 매운 땡초의 본래 맛에 더해져 손 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 해남-닭회

해남군 화원반도로 가는 길목에 ‘장수 통닭’이라는 닭집이 있다. 본점은 대흥사 가는 초입에 자리하지만, 주인장의 따님이 운영하신다는 이 곳에서는 앉은 자리에서 바다를 볼 수 있어서 더 흥이 난다.

토종닭 한 마리를 통으로 잡아서 부위별로 조리하는 음식들이 코스로 선보이는데, 가장 먼저 나오는 요리가 바로 ‘닭회’다.

닭이 오죽 싱싱하면 회로 선뜻 권할까 싶어 입에 넣어보니 야들야들한 가슴살이 입에 짝 붙는다. 맛을 본 적이 없는 도시인들에게는 상상조차 어려울 맛, 잡냄새가 전혀 없이 잘 손질된 모래집이나 뽀얀 가슴살을 참기를 소금에 톡 찍어 먹는 맛이 그만이다.

닭 회를 먹고 나면 고추장 양념에 주물럭거린 닭 불고기가, 풍만한 속살이 흐드러지게 익어 나오는 닭찜이, 녹두를 섞어 천천히 쑨 닭죽이 연달아 상에 오른다. 기대앉은 작은 창문에는 남해가 한 눈에 보이고 닭 회 한 점에 술 한 잔 털어 넣다 보면 왜 그 많은 문인들이 남도에서 났는지 알겠다고 모두들 입을 모은다.

♡ 포항-과메기

예년보다 유난히 춥긴 하지만, 이맘때쯤이면 포항 구룡포 덕장에는 찬 바닷바람에 널어 말리는 과메기가 장관을 이룬다. 해풍에 차게 말려가며 밥에는 냉동, 낮에는 해동하는 과정을 보름 정도 반복하면 발효가 되면서 영양도 맛도 좋아진다. 아스파라긴산이 함유되어 있어서 과메기 안주에 술을 마시면 덜 취한다고 주당들은 귀띔한다.

꼬들하게 건조 되었으면서도 수분이 아직 남아 있어서 야들한 과메기 살을 실파나 마늘, 김으로 싸서 미역 혹은 얼갈이 배추에 올려 초장을 찍어 먹으면 코끝시린 겨울 바다를 그대로 몸 안에 밀어 넣는 느낌이다.

원래는 청어를 말려서 만들던 과메기가 줄어든 청어 어획량 때문에 꽁치로 대체되고는 있지만 청어든, 꽁치든 일단 겨울바람을 한번 견뎌내고 나면 그 전신(前身)과는 전혀 다른 맛으로 거듭나게 되니 일련의 조화들이 신기할 뿐이다.

여행사들 간의 경쟁으로 초저가 해외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다시 둘러보면 먹을 것 많고 풍광이 점잖은 국내 여행지들도 아주 많다. 그렇게 찾아 다니다 보면 ‘대~한민국’이 얼마나 아름답고 풍요로운 나라인지 새삼 느끼게 되고.

다만, 나라 사업으로 지형이 달라지고 있는 부안 앞바다에서는 더 이상 맛있는 백합을 먹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안타까운 현실은 어쩔 수 없지만. 누구를 위하여 나라의 지도가 바뀌고 있는지, 전국의 맛있는 생물들이 언젠가는 다 멸종되는 것이 아닐지 한번쯤은 걱정해 볼 일이다.

푸드 채널 ‘레드 쿡 다이이러’ 진행자 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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