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인이 우스갯소리를 했다. 이렇게 수준 높은 과학적 논란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사례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웃었지만, 곰곰 따져보니 이건 ‘과학’에 대한 논란도, ‘과학적인’ 논란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PD수첩이 제기한 의제는 황우석 교수 논문의 과학성과 진실성이었다. 그 후 연이은 반전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하게 밝혀진 사실은 황우석 교수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이 조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끈질기게 취재를 했던 PD수첩 팀이나 기죽지 않고 문제제기를 해온 젊은 과학도들의 공헌은 바로 이 중요한 사실을 밝혀낸 점이다. 황우석 교수가 이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이 ‘과학적’ 논란은 종지부를 찍었다.
그런데 그 이후 언론의 의제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원천기술’과 ‘줄기세포 바꿔치기’가 등장한다. 황 교수팀이 설정한 의제이다. 언론은 충실하게 이 의제를 받아 신문 지면과 뉴스에 반영하였고, 이는 고스란히 사람들의 이야기 주제가 되었다. 그리고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원천기술이 있다면 논문의 실수는 용서가 가능한 듯 말하기도, 줄기세포가 바뀌어진 것이라면 이 모든 사건 배후에는 엄청난 음모가 있는 듯 말하기도 한다.
이 혼란스러운 진실게임의 운영자는 언론이다. 과학은 과학자에게 맡기라는 초반의 윽박지름에 겁이 나서 그랬을까? 대개의 언론은 희한하게도 ‘경마식’ 보도방식을 택했다. 언론은 묻는다. 누가 유리한가? 누가 누구 편인가? 새로운 반전은 없는가? 결국 승부는 어떻게 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은 연말 모임의 잡담거리일지언정 언론이 물을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왜 많은 언론들은 여전히 이 사건을 ‘승부’로 해석하려 드는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흥미가 사실을 덮는다. 마치 불과 며칠 전까지 국익이 진실을 덮었듯이.
잠깐 돌이켜보자. 애초에 불거졌던 문제는 지금 신문과 TV 뉴스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PD수첩의 취재윤리 문제도 그 중 하나이다.
사과하긴 했으나, 지금은 혹시 “취재윤리는 역시 부차적”이라며 성취감에만 젖어있는 것은 아닐까? 왜 YTN은 정상적이지 않은 환경에서의 인터뷰를 여과 없이 보도하고, 보도 자제를 요청한 정보원의 e메일을 일방적으로 보도했는가? 왜 이 취재윤리에 대해서는 별 언급도, 반성도 없나? 또 있다.
황 교수의 난자채취 방식에 대한 윤리 문제는 다 어디로 갔나? 누가 옳은 지가 밝혀지면 윤리문제도 해결되는 것인가? 그 와중에 조선일보 ‘김대중칼럼’에서는 황 교수 비판론자들을 난데없이 좌익으로 몰았다. 왜 이에 대한 해명은 없이 갑작스레 ‘진실’ 프레임으로 바꿔버렸는가?
이번 사건은 ‘과학’에 대한 논란을 야기한 것이 아니다. 언론의 부적절한 취재윤리와 의제설정의 경박함, 그리고 센세이셔널리즘이 드러난 사건이고, 학자(들)의 비양심, 비과학성이 드러난 사건이다. 그리고 제한된 정보에 휘둘려 이리저리 헤매는 독자와 시청자들의 유약함이 드러난 사건이다.
아무런 반성도 없이 PD수첩 죽이기에서 황우석 죽이기로 말을 바꿔 탄 (일부) 언론은 자신들의 취재윤리, 보도윤리를 되짚어봐야 한다. 아직까지 슬쩍 남의 글을 훔치거나 자료 약간 ‘손을 대서’ 논문 발표하는 학자들도 뜨끔했기를 기대한다.
인터넷 게시판을 읽다가 무릎을 치게 만든 글이 하나 있었다. “논문이 취소되면 어떠냐, 원천기술이 있으면 되지. 과학자로서 망신을 당하면 어떠냐, 정말 특별한 기술자가 되면 되지.
그래서 언젠가는 난치병 환자도 구하고 돈도 벌어 국가에 보탬이 되면 좋지...” 맞다. 많은 사람들, 특히 황 교수에게 여전한 믿음을 갖고 있는 이들의 솔직한 속마음은 이것이 아닐까? 언론의 솔직한 속마음은 무엇일까? 사실이야 어떻든, 사건이 반전을 거듭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계속 끌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길.
/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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