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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내 손이 기억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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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내 손이 기억하는 것들

입력
2005.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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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 자주 입술이 튼다. 어릴 땐 입술이 트면 어머니가 우리 입술 위에 참기름을 살짝 발라주었다. 그게 무슨 약이라고 그걸 바르는 순간 거칠어졌던 입술이 금방 촉촉해지는 느낌이 들곤 했다. 입술에 바른 참기름 냄새가 코로 솔솔 들어오고, 또 혀를 내밀어 그걸 빨아먹는다.

입술만 트는 게 아니다. 늘 밖에서 놀다보니 손도 트고 발도 튼다. 그러면 할아버지가 또 우리를 사랑으로 부르신다. 우선 따뜻한 물에 손을 불려 때를 벗겨내게 한 다음 쇠고기의 기름 덩어리를 화로에 녹여 우리 손 위에 발라주신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바셀린을 두껍게 바른 것과 마찬가지다. 그걸 바르고 장갑을 끼거나 보자기로 둘둘 말고 하룻밤 자고 나면 손이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다.

나는 스무 살이 넘어서도 겨울만 되면 늘 손이 텄다. 쇠죽가마에서 여물을 떠서 외양간까지 여러 차례 날라주는 동안 내 손이 뜨거운 수증기와 바깥의 찬 공기에 동시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방학을 하여 집으로 오면 손등부터 갈라지곤 했다.

왜 갑자기 그때의 일이 떠오를까. 이제는 책상에 앉아 글만 쓰고 있는 내 손이 점점 그 시절의 노동의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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