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7월 미 대선 유세에서 빌 클린턴 후보와 러닝메이트인 앨 고어 부부는 평상복 차림으로 오하이오주의 한 농장에서 농부와 얘기를 나누며 짚단 위에 앉아 있는 사진을 연출했다. 배경에는 옥수수 밭이 펼쳐져 있고, 헛간도 하나 서 있었다. 이 사진은 ‘단지 서민들일 뿐’이라는 제목으로 뉴욕타임스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사진은 그럴싸했지만 클린턴의 서민 이미지는 하루가 못 갔다. 다음날 언론들은 클린턴의 가구소득이 미국 내 상위 1%, 순자산은 상위 3%에 속한다는 재산 수치를 구체적으로 보도하고 나섰다.
■이런 선거홍보도 엄밀히 따지면 일종의 속임수이다. 이미지나 감성을 통해 잠시 홀리는 효과로 유권자들의 인식을 통제하는 기법이다. 진짜 속임수는 날조나 조작이다. 1964년 8월 2일과 4일 미 구축함 2척이 통킹만에서 북베트남 초계정들로부터 야간공격을 받았다는 발표와 함께 미 의회는 북베트남에 대한 개전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후에 밝혀진 바로는 당시 그 해역에서는 남베트남 특공대가 미 해군의 지원 하에 북베트남에 대한 해상습격을 수행하고 있었다. 얼마 전 미 국가안보국(NSA)의 비밀문서를 통해서도 재확인된 ‘통킹만 사건’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 최초의 전쟁영웅은 육군 항공대 소속 콜린 켈리 대위였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 3일 만인 1941년 12월 10일 일본 전함 하루나호의 굴뚝에 폭탄을 투하하며 자신을 희생했다는 발표가 있은 뒤 그는 일약 영웅이 됐다. 전국에서 그의 이름을 딴 노래도 유행했다.
그러나 당시 인근 해역에 그만한 크기의 일본 전함은 없었으며, 실제 하루나호는 3년 후 히로시마 근처 항구에서 격침되기까지 건재했다고 한다. 군과 국민의 사기진작을 위한 전쟁영웅 조작이었다.
■60만 년 전 구석기 유물을 발굴해 일본의 역사와 조상에 대한 자부심을 한껏 높였던 일본 고고학자 후지무라 신이치의 날조 행각이 드러난 것은 2000년 11월이었다. 일찍이 후지무라가 지목한 장소를 발굴하기만 하면 몇 만 년 전의 석기들이 반드시 나왔던 탓에 그는 ‘신의 손’으로까지 불렸다.
그러나 마이니치 신문에 발굴지에 석기를 미리 파묻는 사진이 폭로되자 일본은 기절초풍했다. 황우석 교수 파문도 그런 건가. 미국까지 얽힌 국제적 속임수가 될 지경에 처해 있다. 무엇을 어디까지 믿거나 의심해야 할지 갑자기 온 주변이 속임수 투성이인 것 같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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