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문학은, 현실과 다른 환상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는 점에서 ‘꿈의 공장’ 영화와 찰떡 궁합이다. 상상으로만 가능한 판타지의 세계가 마치 현실인양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여느 전쟁 영화나 역사극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영화로서 판타지가 그만큼 경쟁력이 있고, 판타지 문학이 스크린으로 외연을 넓힌다는 점에서 둘의 만남은 행복한 결합이다.
판타지 문학이 영화의 날개를 달 수 있었던 것은 급속도로 진화하는 컴퓨터 그래픽 덕분이다. 판타지 문학의 거장 J.R.R. 톨킨(1892~1973)과 어깨를 나란히 한 판타지 소설 작가 C.S. 루이스(1898~1963)의 베스트 셀러 ‘나니아 연대기’도 테크놀러지의 힘을 등에 업고 관객을 만난다.
다양한 상상 속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반지의 제왕’과 맞닿아 있고, 어린이의 모험담을 그린다는 점에서 ‘해리 포터’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나니아 연대기’의 내용은 판타지의 전형성을 따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런던 폭격을 피해 시골로 보내진 네 남매가 구석진 방의 낡은 옷장 문을 통해 인간계와 전혀 다른 세상 나니아를 만난다는 것이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마녀 제이디스(틸라 스윈튼)는 나니아를 겨울 왕국으로 만들어 폭정을 일삼으며, 나니아의 선량한 종족들은 자신들을 압제에서 구해낼 네 남매의 ‘강림’을 기다린다. 원치 않던 모험의 세계에 빠져든 네 남매는 사자 왕 아슬란과 함께 악에 맞서며 정의의 가치와 우애의 의미를 함께 깨우친다.
‘반지의 제왕’이 절대 권력을 탐하는 인간의 본능을 우화적으로 비판했다면, ‘나니아 연대기’는 기독교로 대변되는 서구 세계관을 담고 있다. 마녀가 나니아를 지배한 이후 크리스마스가 사라졌다거나, 빨간 방한복만 입지 않았을 뿐 산타클로스가 분명한 사슴썰매 탄 노인이 등장해 네 남매에게 무기를 선물하는 것 등은 영화에 미친 기독교의 영향을 방증한다.
1950년 원작이 쓰여진 만큼, 히틀러와 스탈린으로 대변되는 당시 전체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도 담고 있다. 기독교를 선으로 표현하고 독재에 대해서는 비판의식을 뚜렷하게 보여주기에, 영화 속에서는 선악의 구분이 명확하고 이야기 구조가 단선적, 평면적이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에 비견하는 깊이를 원하거나 ‘해리 포터’ 만큼 눈높이를 낮춘 판타지를 기다린 사람은 다소 실망할 수 있다.
그리스 신화 속 상상도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던 반인반수의 동물 켄타우로스와 미노타우로스를 살아 있는 생명체로 탄생시킨 것이 경이롭다.
마녀 제이디스와 건곤일척의 대결을 펼치는 사자 아슬란의 ‘표정 연기’도 일품이다. 디지털 기술로 만든 갈기의 섬세함은 실제 사자의 그것을 능가하고 지혜와 위엄을 갖춘 눈빛 연기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
특히 마녀의 부대와 아슬란의 군대가 평원에서 맞붙는 전투장면은 시각적 즐거움의 절정. 그러나 이야기의 재미는 컴퓨터 그래픽이 만들어낸 판타지의 세계만큼 환상적이지 못하다. 주인공 사이에 갈등은 있으나 긴장을 일으킬 정도로 그 진폭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7부로 이루어진 소설 ‘나니아 연대기’의 1부 ‘나니아 연대기: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을 옮긴 것이다. 애니메이션 ‘슈렉’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앤드류 아담슨 감독의 첫 실사 영화다. 29일 개봉. 전체.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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