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5개월 동안의 ‘X 파일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황교안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는 “부끄러운 것 없는 수사를 했다”고 말했다. “정말 하늘 아래 부끄러움이 없느냐”는 비아냥거림이 잔뜩 섞인 기자의 질문에 짐짓 결연하게 ‘그렇다’고 답했다고 한다.
황 차장의 답변을 들으며 오히려 궁금증이 일었다. 진심으로 부끄럽지 않아서 그렇게 답한 걸까, 아니면 부끄럽지만 이 악물고 수치심을 참으며 한 말일까?
황 차장을 궁지에 몰아 넣은 것은 수사 결과 때문이다. X 파일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수천만 원의 돈을 검찰 고위직에서 말단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전달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당시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 간의 대화록이다. 이러한 금품 제공은 모두 이건희 삼성 회장의 지시이며, 1997년 이전부터 계속된 것임을 확인시켜주는 내용도 들어 있다.
●X파일 속 삼성 로비 손 못 대
지난 7월 MBC 이상호 기자를 통해 폭로된 대화록을 듣고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견제받지 않는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삼성이 온갖 비리의혹을 받으면서도 그 동안 다른 재벌과 달리 검찰의 칼날을 피해갔던 배경의 일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돌발변수가 등장한다. X 파일은 안기부가 불법적으로 녹취했다는 것이다. 일순 X 파일 사건은 ‘불법 도청’과 ‘삼성의 조직적 로비 의혹’ 중 어느 것이 더 심각한 문제냐를 따지는 그야말로 소모적인 논란으로 빠져들었다. 난데없이 대통령까지 한쪽 편을 들면서 논란은 더욱 가열되었다.
상식적인 국민들은 이런 논란이 왜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둘 다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범죄행위이므로 모두 법대로 엄정하게 처리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으로 가장 큰 혜택을 본 쪽은 당연히 삼성과 검찰이다. 광장에 둘만 서서 온 국민의 비난을 한꺼번에 받다가 갑자기 안기부가 나타나 그 화살을 모두 맞아 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그러는 사이 삼성은 애꿎은 임직원들만 대국민 사과를 하게 한 후 사건의 핵심 인물들을 해외로 나가게 하고, 검찰은 특수부를 제쳐두고 뜬금없이 공안부에 사건 수사를 맡긴다.
사실 이때부터 검찰의 수사 결과는 예정된 것이었다. 검찰은 처음부터 ‘불법 도청’사건을 먼저 수사할 것이며, ‘독수독과(毒樹毒果) 이론’에 따라 X 파일 내용은 수사할 수 없다고 밝혀, 사실상 삼성 측 주요 인사들의 도피를 용인하고, 면죄부를 주었다는 의혹이 있었다.
사건의 성격상 정경유착, 기업범죄를 전문으로 하는 특수부가 담당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업 범죄 수사 경험이 없는 공안부가 사건을 맡은 것은 수사 방향을 삼성 쪽으로 잡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사상 최초로 국정원을 압수수색하면서도 사기업인 삼성에 대해서는 그런 계획조차 없었다. 이런 검찰의 태도가 ‘수사 의지가 없다’는 국민들의 비난과 의혹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X 파일의 당사자이기도 한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에 대해 이번 수사 결과 발표는 삼성에 대한 수사를 포기한 것이고, ‘역시 검찰에 이 사건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것이다.
●'검찰에 맡겨선 안된다' 재확인
그렇다면 결국 삼성과 검사들의 관계에 대한 수사는 독립된 기관인 특별검사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검찰이 삼성 등에 대해 아무리 범죄 혐의가 없다고 발표하더라도 이를 온전하게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검찰은 삼성 계열사냐’, ‘삼성으로부터 월급 받느냐’라는 비난만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비난과 의혹을 만들고도 ‘부끄러움이 없다’고 강변하면, 그런 검찰로 인해 국민들이 부끄러워진다. 국민을 부끄럽게 만들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송호창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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