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은 지난해 국가별 1인당 국민소득(GNI)을 기준으로 대강 800달러 밑이면 저소득, 800~3,000달러는 중저소득, 3,000~9,300달러는 중고소득, 그 위는 고소득 경제로 분류한다. 연도별로 기준이 조금씩 상향조정되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은 1990년대 중반부터 최상위 그룹에 진입했고 현재 50여개국이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중동의 석유부국에서 보듯이 고소득이 곧 선진국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엄밀한 규정은 아니지만, 선진국이라고 하면 경제적 성취 뿐 아니라 인구규모, 민주주의, 언론자유, 권력문화, 삶의 질 등 정치ㆍ사회ㆍ문화 지표도 두루 감안된다.
▦그래도 일정 소득기준을 넘는 것은 필수다. 참여정부가 집권 첫해부터 7% 성장 공약을 파기하고 ‘1인당 GNI 2만달러의 선진한국’을 어젠다로 내세운 것은 이런 까닭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올초 연두회견에서도 오랜 기간 인내와 정성을 쏟아야 열매를 얻는다는 ‘감나무론’을 제시하며 자신은 선진한국으로 가는 길잡이 역할에 만족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정부 관계자들은 차기정부가 들어서는 2008년이면 대망의 2만달러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GNI는 1만4,162달러였다. 그것이 올해 1만6,000달러를 넘고 2007년 1만8,000달러를 거쳐 2008년 목표를 이룬다는 게 정부가 생각하는 스케줄이다.
엊그제 열린 ‘참여정부 3년 평가 당ㆍ정ㆍ청 워크숍’에서 이해찬 총리는 “늦어도 2009년이면…”이라고 여지를 남겼지만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은 2012년이면 3만달러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그들 눈에는 현재 2만달러를 넘는 22개국이나 3만달러를 넘는 17개국을 따라잡는 것이 시간문제인 듯 하다.
▦이 기대에는 2가지 치명적 오류가 있다. 첫째는 환율 착시현상이다. 지난해 평균 환율은 달러당 1,146원이었으나 올해는 1,020원대로 떨어졌다. 교역조건을 반영한 실질 GNI, 즉 원화로 환산한 실질 구매력은 거의 늘지 않았다는 저간의 통계와 일치한다. 둘째는 ‘따라잡기’의 시차를 외면한 것이다.
2만달러 세상이 무릉도원이 아닌 이상, 이미 그 경지에 이른 국가들이라고 가만히 앉아있을 리 없다. 설령 2만달러에 이른다고 해도 그것은 전체 국민의 평균일 따름이다. 양극화의 분포가 말하는 분배는 악화될 소지가 더 크다. 유신시대 선전술 같은 2만달러 얘기는 이제 접자.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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