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과거사위(위원장 이종수 한성대 교수)는 16일 논란을 빚어온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에 대해 “유서는 강씨가 대신 쓴 것이 아니라 분신 자살한 김기설씨 본인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잠정결론을 내렸다.
그 근거로 과거사위는 이날 경찰청에서 가진 중간조사결과 발표를 통해 “검찰이 김기설씨의 분신자살 당일인 1991년 5월8일 이미 ‘유서대필’로 미리 결론을 내려두는 등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했을 가능성이 있고 당시 필적감정 역시 객관적이고 공정하지 않았다는 의문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과거사위는 ‘서울대 깃발(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과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도 발표했다.
유서대필 사건
과거사위는 우선 “유서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이던 김기설씨의 필체로 보인다”고 밝혔다. 민간위원인 안상운 변호사는 “김씨의 고향친구, 중학교 동창생들이 유서가 김씨의 자필이라고 진술했으며 조사과정에서 입수한 김씨의 전대협 노트 필체와 유서 필체가 육안으로 보아 유사하다”고 말했다.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 조사의 공정성도 문제 삼았다. 안 변호사는 “국과수 조사과정에서 관례와 달리 검사 및 검찰직원이 직접 국과수를 방문해 감정문건에 대해 설명하고 국과수 직원이 검사에게 ‘어떠한 감정을 원하느냐’고 통화하는 등 감정결과가 객관적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과거사위는 또 “검찰이 김씨 분신자살 당일 전민련 총무부장이던 강기훈씨에 대해 자살방조혐의로 압수수색영장을 발급받아 강씨의 필적을 입수하는 등 강씨를 자살방조 피의자로 특정하고 수사를 진행한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과거사위는 그러나 “유서 원본에 대한 필적감정을 하지 못한 상태에선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면서 “검찰이 유서 원본을 비롯한 유서대필 사건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수사기록이나 재판기록을 열람하지 못한 상황에서 검찰의 무리한 수사 가능성을 지적한 것은 믿을 만한 결과발표도 아닐 뿐더러 사실도 아니다”라며 “오랜 기간에 걸친 재판 과정에서 증거 채택 여부를 놓고 공방을 벌인 사안에 대해 경찰청 과거사위가 언급하는 것은 사법부 권위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사건을 수사했던 신상규 부산고검 차장은 “분신 다음날 김기설씨 유족이 필적을 내놓으면서 김씨 필적이 아니라고 주장해 수사에 착수했다”며 “강기훈씨를 첫날부터 대필자로 지목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 사건은 경찰과 전혀 관련이 없는데도 왜 경찰청 과거사위에서 채택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검찰에 있는 기록도 보지 않고 뭘 가지고 결론을 냈는지 납득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91년 5월 김기설씨가 서강대 옥상에서 유서 2장을 남기고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 후 투신자살하자 검찰은 강기훈씨를 유서대필 등 자살방조 혐의로 구속했다. 재야단체는 그 동안 검ㆍ경의 조작사건이라고 주장해왔지만, 강씨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3년2개월을 복역한 뒤 94년 만기 출소했다. 당시 필적감정을 했던 김모 국과수 문서분석실장은 다른 사건과 관련해 허위감정을 해주고 돈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서울대 깃발 사건과 민청련 사건
과거사위는 1984년 ‘서울대 깃발 사건’ 및 1983년 ‘민청련 사건’에서는 수사기관이 고문 및 가혹행위를 자행했으며 관련자를 좌경용공분자로 몰아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안기부, 검찰, 보안사 등이 협의 개입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완범(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위원은 “당시 민청련 의장이던 김근태 현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한 고문이 당시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장의 지시로 이뤄졌다는 진술을 당시 물고문과 전기고문 등을 자행한 수사관 2명으로부터 받아냈다”고 말했다.
깃발 사건과 민청련 사건은 85년 전두환 정권 당시 12대 총선 참패와 민주화 운동 격화라는 정치적 상황의 반전을 위해 민추위와 민청련에 대해 용공혐의를 씌워 국가보안법 및 집시법 위반 등으로 처벌한 공안 사건이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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