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렬하고 어지러운 노래가 차고 넘치는 요즘 세상에 시로 만든 서정적 노래들이 먹혀들기나 할까. 4장의 CD와 2권의 책으로 나온 ‘백창우, 시를 노래하다’(우리교육 발행)를 듣고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 시인 64명의 시를 한 편씩 골라 노래로 만들어 음반에 담고 책에는 수록 시인들의 시에 대한 생각과 느낌, 시 노래를 만드는 마음을 차분하게 풀어놨다. 노래는 김현성 이정열 권진원 정태춘 장사익 김용우 등 여러 가수들이 불렀다.
윤동주 이육사 이상 이상화 한용운 김수영 신동엽 백석 신경림 고은 김지하 권정생 김용택 정호승 정희승 도종환 안도현 황지우 최승자 강은교 나희덕 기형도…. 이번 음반으로 만나는 시인들의 이름을 길게 불러본 것은 시가 우리 곁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왔으면 하면 바람에서다. 한 10년 전만 해도 수 십 만 부 팔리는 시집이 있었다. 지금은 잘 나가야 2,000~3,000부다.
“한 10년, 20년 전만 해도 시가 우리 가까이 있었죠. 누구나 한 권쯤 시집을 들고 다녔고, 윤동주 김소월 시 한 편쯤은 알고 있었는데. 요즘은 인터넷에서 자주 만나는 시가 아니면 모르고, 적극적으로 시집을 찾는 사람도 적고. 시를 좀 더 쉽고 편하게 만날 방법으로, 시노래를 만들었지요.”
백창우(46)는 ‘시 쓰고 노래 만드는 사람’이다. 명함에 아예 그렇게 박았다.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임희숙 노래) ‘부치지 않은 편지’(김광석 노래) 같은 히트곡의 작곡가 겸 가수,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를 비롯한 4권의 시집을 낸 시인, ‘이원수 동요집’ ‘딱지 따먹기’ 같은 동요 작곡집을 여러 장 내고 20년 가까이 어린이 노래 모임 ‘굴렁쇠’를 이끌고 있는 어린이 노래 운동가이다.
이번 음반이 아니더라도 시노래 만들기는 그가 오래 동안 꾸준히 해온 작업이다. 중학생 시절부터 틈틈이 시를 읽고, 쓰고, 시에 곡을 붙여왔다. 책에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를 키운 것의 절반쯤은 시와 노래였다.” “이 세상이 아름다운 건, 이 세상 어딘가에 시가 숨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시들이, 이 노래들이 어느날 누군가의 가슴에 민들레 꽃씨처럼 둥둥 날아가 앉았으면 좋겠다. 아주 조그만 울림이라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책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좋은 시인들이 많이 있다. 그러니까 좋은 시도 많이 있다. 우리나라가 아무리 ‘그지 같아도’ 그거 하난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시인이 많은 나라… 그런데 세상은 영 꼴이 말이 아니고… 왜 그런 거지?…. ”
책을 보면 그가 시를 무척 좋아하고 참 많이도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눌하고 낮게 노래하는 그의 목소리처럼 글도 조용하다. 하지만 뜻은 단단하고 생각은 깊다. 그가 지닌 시와 노래, 추억의 곳간은 샘이 날 만큼 풍요로워 보인다.
“책에도 썼듯, 시가 밥 먹여 주는 건 아니지만 마음에 맑은 바람 한 줄기 불게 할 수는 있다고 믿습니다. 시와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세상이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동요든 가요든 그가 만든 노래들은 요란하게 방송 타지 않아도 알음알음으로 낮게 그리고 멀리 곳곳으로 스며들어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 음반의 시노래들도 그렇게 천천히 퍼져나갈 것 같다. 그는 이 노래들로 21일 서울 한영외고를 찾고, 24일 오후 3시 서울 종각의 반디앤루니스 서점 앞 광장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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