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삼성의 대선자금 및 검사 떡값 제공 의혹에 대해선 처벌 불가로 결론을 내리고, 도청내용을 보도한 MBC 이상호 기자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해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143일에 걸친 수사를 통해 검찰은 김영삼ㆍ김대중 정부 시절 자행된 국가 정보기관의 조직적인 대규모 도청 실태를 낱낱이 밝혀냈다. 이전 수사팀이 1998년부터 숱하게 제기됐던 국정원의 휴대폰 도청의혹에 대해 올 4월 근거가 없다며 면죄부를 줬던 것에 비춰보면 이번 수사팀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는 것이 검찰 안팎의 평가다.
하지만 검찰 수사는 MBC 이상호 기자가 이른바 안기부 X파일을 통해 드러내려고 했던 본질적인 문제, 즉 정치권-재벌-언론의 검은 유착 관계와 관련해서는 누구도 사법처리하지 못했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유력 재벌인 삼성그룹 이학수 부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대리인 격인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전 주미대사)이 정치자금 및 검찰에 대한 명절 떡값 분배 등에 대해 나눴던 추악한 대화가 세상에 고스란히 공개돼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으나 검찰에선 면죄부를 받은 것이다. 이상호 기자의 표현을 빌면 ‘X파일 아젠다’를 검찰이 공소시효 등을 이유로 외면한 셈이다.
수사발표를 종합하면 검찰은 삼성측의 치밀한 ‘말 맞추기’에 맥없이 무너진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 조사에서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동생 회성씨는 이번 조사에서 98년 세풍(稅風) 수사 때 삼성에서 60억원을 받았다는 진술을 바꿔 금액을 30억~40억원으로 줄였다.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도 당시 회성씨에게 40억~50억원을 전달했으며, 이 돈은 이건희 회장의 개인자금이었다고 진술했다. 자금의 출처를 이건희 회장 사재(私財)라고 주장하면, 회사돈을 횡령했다는 혐의를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참여연대가 고발한 삼성의 뇌물공여 및 정치자금법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 가운데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것은 횡령 부분밖에 없었다.
검찰은 이미 세풍 수사과정에서 나온 이회성씨 진술, 삼성 계열사 기밀비로 10억원을 조성했다는 김인주씨 진술 등을 확보하고 있었음에도 이들의 진술번복을 제대로 추궁하지 않았다. 검찰은 16개 삼성 계열사의 회계담당자를 직접 불러 계열사의 자금 횡령여부를 확인하고 이건희 회장의 개인자금 조성경위 및 규모를 검토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회장에 대해서는 서면조사 한번으로 수사를 끝냈고 삼성 계열사의 해명을 듣는 수준에 그쳤다. 때문에 검찰이 국정원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을 단행한 것만큼의 수사의지를 삼성에 대해서는 보여주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검찰은 X파일의 또 다른 주요 폭로 내용인 검사 촌지 수수 부분도 도청자료 외에는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하지만 금품 수수자로 거명된 검찰 간부에 대해 소환조사 없이 서면조사로만 끝내고, “오래된 일이어서 기억이 안 난다”는 홍석현 전 주미대사, 이학수 부회장의 진술에만 의존하는 등 봐주기 흔적이 역력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검찰은 X파일을 보도한 이상호 기자에 대해서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를 엄격히 물었다. 검찰이 “본말이 바뀐 수사를 했다”“몸통 대신 깃털만 건드렸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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