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白石)이라는 이름과 시에서는 겨울 느낌, 또는 북국 정서가 진하게 묻어 난다.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 가 나오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도 그렇거니와, 다른 대표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도 희고 순수한 이미지로 칠해져 있다. 쌀랑쌀랑>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사랑은 하고 눈은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중략)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 백석은 월북하여 한때 잊혀진 시인이 되었고, 그와 사랑을 나눈 ‘나타샤’ 김영한은 남에서 큰 재산을 모았다. 가난한>
권번 출신의 기생이었던 그는 서울 성북동에 고급 요정 대원각을 운영했다. “배운 것도 많지 않고 죄가 많다”던 그는 타계하기 전 7,000여 평의 요정 부지를 법정 스님에게 기증했다. 그 터에 문을 연 절이 길상사다. ‘나타샤’는 불교신자도 아니었다. ‘무소유’의 스님을 신뢰하며 “남은 한(恨)으로 절의 종을 힘껏 치고 싶었을 뿐”인 여인이었다.
▦ 마지막 100억원 대의 부동산을 사회에 환원시킨 후, 그는 세상을 떴다. 백석도 길상사가 창건되기 2년 전 북에서 작고했다. 길상사 창건 8주년을 기념하여 법정 스님이 11일 법회를 열었다. 세밑에 모인 사부대중을 향한 그의 법문은 “연말로 접어들면서 올해를 어떻게 살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고 시작되었다.
그가 어느날 택시를 탔는데 “길상사 가자”고 하니까 기사가 “아! 그 부자 절이요?”라고 물었다. 그는 “길상사를 세울 때 가난한 절로 만들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 스님은 어느 선방에 붙어 있던 ‘생사사대 무상신속(生死事大 無常迅速)’이라는 말 풀이를 들려 주었다. 삶과 죽음이 가장 큰 일이고, 덧없는 세월은 빨리 지나가 버린다는 뜻이다.
하여, 우리는 순간을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이 부자가 되기보다는, 이웃을 배려하고 나눠가지는, 잘 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 제일의 부자 동네인 성북동에 길상사가 있고, 그 절의 큰 회화나무에 가끔 ‘무소유’의 설법이 쌀랑쌀랑 소리를 낸다는 점만으로도 큰 상징이 될 것이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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