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국가연합(ASEAN)+3 정상회담 및 제1차 동아시아 정상회의(EAS)가 열리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시내에는 이 행사를 알리는 소형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어 있다.
플래카드에 그려진 상징물은 말레이시아의 자부심이라는 페트로나스 트윈타워(452m)다. 이 쌍둥이 빌딩은 2003년 말 대만의 101층짜리 빌딩(480m)에 자리를 넘겨주기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관광객들은 007 영화에도 등장한 이 빌딩을 방문하고, 사진을 찍는다. 이를테면 이 빌딩은 말레이시아의 도약을 상징하는 랜드마크인 셈이다.
과연 한국의 랜드마크는 무엇일까. 남대문, 경복궁, 남산타워, 63빌딩, 한강, 붉은 악마 등이 떠올랐지만 단번에 떠오르는 이미지로는 조금 모자란 듯하다. 그런 느낌은 한국의 랜드마크가 아직 없다는 데서 기인한 것 아닐까.
산업정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2005 국가 브랜드 가치평가’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전체 37개국 중에서 13위를 차지했다. 2003년 10위, 2004년 12위에 이어 연속 3년째 순위가 하락한 것이다. 이는 국가 브랜드 가치를 구성하는 ‘국가 브랜드 파워지수’가 전년도에 비해 5계단 하락한 18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 지수는 65개국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정부와 기업, 국민, 민간단체의 국가 브랜드 홍보활동에 대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로 도출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같은 결과는 정보기술(IT) 산업을 근간으로 하는 한국의 비약적인 발전에도 불구, 여전히 외국인들은 한국의 랜드마크를 쉽게 떠올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는 무엇이어야 할까. 어떤 이는 어느 기업이 잠실에 지으려는 세계 최고층 빌딩을 들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호주 시드니의 명물인 오페라 하우스 같은 건축물을 만들자고도 한다. 하지만 나는 좀 색다른 제안을 하고 싶다.
아세안+3 정상회담에 앞서 지난 12일 열린 IT 장관 회담에서의 일이다. 다토 세리 림긍약 말레이시아 에너지ㆍ수자원ㆍ통신부장관은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에게 한국의 IT839 전략(8개 신규서비스, 3대 인프라, 9대 신성장엔진을 묶는 IT 산업 전략)을 거론하며 “한국을 배워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13일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과 한국형 휴대인터넷 와이브로(WiBro) 서비스 시연을 겸한 한국ㆍ말레이시아 IT 비즈니스포럼 기자회견에서도 기자들에게 “한국의 IT839 정책을 공부하라”고 역설했다.
사실 외국 정부의 IT 정책 담당자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한국의 IT839 정책은 널리 알려졌다. 서비스와 인프라, 그리고 기술개발을 일련의 가치사슬로 묶어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키는 초유의 정책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정책을 바탕으로 한국은 DMB나 와이브로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 단계에 와있다. 말레이시아에서 만난 기업인들은 “IT839가 무엇이냐고 묻는 현지 기업인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IT839가 아시아에서만 유명한 것은 아니다. 지난 9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유럽연합(EU) IT 장관 회담인 ‘i2010’은 비회원국으로는 유일하게 한국의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을 개막 연설자로 초청해 IT839의 비전을 듣기도 했다.
유형의 건축물만 랜드마크가 되라는 법은 없다. 지금 IT839 전략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유비쿼터스 사회로 진입하고,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실천 전략으로서 명성을 얻어가고 있다. 바야흐로 지식정보 시대다.
시대마다 그에 걸맞은 랜드마크가 필요한 것처럼, 디지털 세계를 선도하는 한국의 IT839 전략은 지식기반사회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손연기 한국정보문화진흥원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