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학교법 개정안 통과 파장이 종교계로 급속히 번지고 있다. 개정 사학법을 놓고 개신교와 천주교 등 종교계의 반발 수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개신교 연합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지난 9일 법안 통과 직후 일찌감치 강도 높은 대 정부 투쟁을 선언한 데 이어, 14일에는 가톨릭학교법인연합회가 “사학법 불복종운동, 위헌소송 제기는 물론 현 정권에 대한 퇴진운동까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처할 것”이라며 가세하면서 당정을 압박하고 있다.
기독교와 천주교에 비해 운영하는 학교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대한불교 조계종도 이날 “사태의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으며, 조만간 내부 의견을 정리하기 위한 회의를 열 것”이라고 밝혀 개정 사학법 반대 투쟁에 나설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이에 따라 교육계에서는 개정 사학법 파동이 종교계와 정부간 전면전으로 번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종교계의 반발은 국내 사학의 상당수가 ‘미션스쿨(종교 학교)’인데서 출발한다. 종교계는 사학법 개정안이 종교계의 의사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처리된 것에 상당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한기총 관계자는 “당정이 개정 사학법을 만들면서 종교계와 심도 있는 논의 1차례 한 적이 없다”며 “학교가 송두리째 외부 인사에게 맡겨길 게 뻔한 데 누가 찬성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2004년 4월 현재 종교계와 관련된 재단이 운영하는 학교는 전국적으로 490개에 달한다. 전체 사학(1,955개)의 4분의 1에 수준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종단이 운영하는 학교가 많은 것은 1885년 국내 최초의 근대 중등교육 기관인 배재학당이 설립된 이래 사학이 사실상 우리 교육의 중심이었던 근대초기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광복 이후에도 주요 교단들이 선교활동의 일환으로 앞다퉈 학교를 세운 까닭에 교육 분야에서 종교계의 기득권은 막강하다는 게 교육계 안팎의 분석이다.
종교계는 개정 사학법의 골자인 개방형 이사제 도입을 “수용하지 못할 사안”이라고 못박고 있다. 외부 인사가 이사로 참여할 경우 학교 설립 목적이기도 한 신앙교육을 자칫 훼손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김수환 추기경이 13일 사학법 반대 장외투쟁을 시작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전국교직원노조 같은 단체가 지금까지 국가관, 인간관을 잘 교육시켰다고 보기 힘들며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고 말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순수하게 운영해온 사학이 비리의 온상으로 몰리고 있다는 피해의식도 종교계가 반발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이다. 지관 스님이 최근 한 공식 석상에서 “일제 강점기에는 체면을 세우기 위해 학교를 세운 사람이 많다.
그래서 평생 다 바쳤는데 이렇게 돼버렸다고 한다”는 발언이나, 김 추기경의 “비리가 없는 사학도 죄인이 돼버렸다”는 언급은 모두 이런 인식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종교계가 사학법 문제를 놓고 끝까지 정부와 강경하게 맞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학교 폐쇄나 신입생 배정거부 등 극단적 저항은 “종교계가 법 위에 군림하려 한다”는 비난을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정 사학법 내용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던 김 추기경은 박 대표와의 면담에서 “(이미 통과된 법이) 무효가 될 수 있겠느냐”며 사학법 ‘철회’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전성철 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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