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의 천황’이라 불리던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ㆍ1910~1998) 감독은 1970년 그의 첫 컬러 영화 ‘도데스카덴’이 흥행에 실패하자 자살을 기도한다.
더 이상 영화를 만들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의 불행은 일본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렸으나 영화사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상업성을 배제하지 않는 세계적 감독이지만 그의 영화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가 다시 순수 일본 자본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기까지는 21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필요했다.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이 날개가 꺾일 위기에 놓였다. 그 동안 임 감독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온 태흥영화사는 지난 3일 제작 포기를 선언했다. ‘천년학’은 원래 올 여름 촬영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투자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미루어져 왔다. 당초 80억원 대로 계획했던 제작비가 40억 원대로 대폭 축소되었는데도 투자자들은 선뜻 지갑을 열지 않았다. 스타 배우가 캐스팅 되지 않았고, 60억원을 들인 임 감독의 전작 ‘하류인생’이 58만 관객이라는 초라한 흥행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구로사와 감독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아무리 거장이라 해도 자본의 논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렇더라도 임 감독이 처한 어려운 상황은 한국영화의 부박(浮薄)한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구로사와 감독이 일본에서 메가폰을 쥘 수 없던 시절은 일본영화산업이 깊은 침체의 늪에 빠졌던 때였다. 하지만 현재 한국영화는 3년 연속 시장점유율 50%를 넘어서고 평균제작비가 50억 원대에 육박하는 등 한창 호시절을 구가하고 있다.
다행히 몇 군데에서 임 감독에게 투자의사를 보이고 있다니 ‘천년학’의 앞날이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5년의 칩거를 거친 구로사와 감독은 75년 소련이 제작비를 댄 ‘데루스 우잘라’로 멋지게 재기에 성공하며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칸영화제 감독상, 베를린영화제 명예황금곰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영화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노 대가도 역경을 이기고 훨훨 날아오르기를 기원한다. ‘천년학’이 비상하느냐 추락하느냐는 한국영화계의 ‘수준’과 미래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라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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