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아버지는 내가 물리학을 공부하는 걸 못마땅해하셨다. 그는 내 전공과목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을 하시더니 마침내는 이렇게 선언했다. "네 성적은 감동스럽다만 나를 위해 그걸 한다고는 생각하지 마라!" 당시만 해도 나는 아버지가 왜 그렇게 황당한 이야기를 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성적이 매우 좋았지만 성적에 대해서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그래서 당연히 아버지를 감동시키려고 성적표를 집으로 갖고 가지도 않았다. 나는 아버지의 행동을 겁쟁이 외계인의 공습에 대해 토론하자는 것만큼이나 엉터리 같은 이야기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제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그게 그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아버지는 내가 기본적인 밥벌이 문제도 이해를 못 할까 봐 걱정을 하셔서 나중에 돈벌이라도 될 일에 에너지를 쏟도록 하신 것이다.
이건 나만 겪은 일은 아니다. 역사를 통해 수없이 되풀이된다. 은행가인 클로드 모네의 아버지는 아들의 그림이나 방랑벽을 타박했고 에드워드 텔러의 아버지는 아들로 하여금 수학에 관심을 끊고 화공학을 전공하게 하려고 애썼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아버지도 아들의 영화취미는 사랑했지만 영화감독이 되는 건 반대했다.
진지한 부모들은 창조적인 직업의 길이 경제적으로 위험하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데에서 불화가 싹튼다. 그러나 매우 창조적인 자녀들은 부모들의 충고를 무시한다. 문명이 생긴 이래 인간을 괴롭혀온 수수께끼의 본질이다. 좋은 학생과 좋은 부모는 상반된 것을 원한다.
물론 좀 어두운 측면에서 자녀들이 골칫거리를 피하려고 그들만의 길을 고집하는 경우도 있다. 가령 자녀들이 약물을 하는지는 요즘 하는 일을 말하지 않는 걸로 알 수 있다. 미국의 중ㆍ고등학교에서 공부도 못하고 가난한 학생들은 마약이나 조기 임신, 총싸움, 자동차 사고 같은 '창조적인' 활동에 몰두한다.
한국의 가장 성공적인 수출품인 한류는 소외집단의 반발에서 생겨났다. 한국의 랩과 소울, 리듬앤블루스는 모두 고통스런 현실에서 별로 좋지 않은 방법으로 벗어나려는 미국식 방식에서 시작됐다. 급성장하는 한국의 애니메이션 산업은 일본의 음성 만화책에서 나왔으며 일부는 그림이 매우 화려하고 폭력적이어서 젊은 사람들로 하여금 희망없어 보이는 현실을 심리적으로나마 탈출하게 해준다. 이런 문제가 없었다면 한류도 없었을 것이다.
자유냐 안정이냐 사이에서 균형잡기는 매우 힘들다. 특히 자식이 개입돼 있을 때는 잘못 이해하기도 한다. 어머니의 친구분은 자녀들이 천재라고 생각해서 성적만 좋으면 괴상한 행동도 감싸주었다. 그 결과 그들은 약물 문제와 성 정체성에서 어려움을 겪었으며 결국 독립적으로 생활을 꾸리는 것도 늦게야 가능해졌다.
물론 그들 중 누구도 노벨상을 받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은 개인주의는 격려하셨지만 매우 조건이 달랐다. 나는 작은 동네에서 자라서 학교에서 경쟁도 거의 없었고 집에 돈이 없다 보니 엄마도 일을 하셨고 부모님은 아이들한테 종교적인 활동을 일깨워줘야 한다고 하셨고 스스로도 실천하셨다.
이것 가운데 어떤 것이 의미가 있었는지도 모르고 아니면 차이는 유전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누가 알겠는가. 우리들 부모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며 우리가 역할을 못하더라도 능력 있는 자녀들은 부모들의 실수를 어떻게 극복할지 점차적으로 알아갈 것이라는 사실에 위로를 얻는다.
유럽식 교육과 유교식 교육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위기를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미국 대학의 교수들은 아시아 학생들이 고등학교에서나 입학시험에서는 서양인들보다 더 잘하는 것을 안다. 그러나 교수들은 이 때문에 아시아 학생들을 많이 뽑은 결과 '창조성의 갭'이 커지는 것도 인식하고 있다.
내가 스탠포드에서 가르쳤던 중국학생이 있다. 그는 잘생기고 성격 좋고 똑똑해서 내 어려운 양자역학시험은 쉽게 통과해서 하버드대 대학원에 입학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2년 뒤 우연히 대학교수인 그의 아버지를 만났더니 아들이 실패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매우 우수한 연구소에서 해고가 되어 강의하는 자리를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이것도 고상한 직업이지만 솔직히 스탠포드에서 하버드까지 산더미 같은 학비를 댄 부모로서는 악몽이다. 이 청년은 바로 내가 이름붙인 '아시아인 대학원생 용광로' 사례에 해당된다. 청년은 과학연구 대학원에 가고 싶지 않았으나 평생 자기의 진짜 꿈을 승화만 시키다 보니 과학을 싫어한다는 것을 발견하는데 거의 30년이 걸렸다. 사람이 30살쯤 되어 살아온 방식을 바꾸려면 매우 위험하다. 이 청년의 아버지는 고등학교 때 좌표를 아주 잘 제시해서 스탠포드는 거뜬히 입학시켰지만 그 결과 그를 위험하게 만들었다.
반대로 부모가 너무 방향을 제시하지 않아 위험한 경우도 있다. 내 고등학교 친구 하나는 공부를 못하는데 좌절해서 마약을 먹고는 과속운전으로 자살했다. 매우 유명한 동료교수의 아들은 공부가 지겹다며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동네 식당에서 웨이터 일을 하고 있다. 다른 동료교수의 아들은 스페인에 가서 플라맹고 기타를 배운다고 대학교를 중퇴했다. 젊은이들의 이런 독립적인 행동은 풍요로움에서 나온다. 한국에서도 경제적인 여건이 좋아지면서 부모들이 이런 일들을 많이 겪고 있다. 비록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러나 위기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장인은 대학총장을 지내셨는데 한번은 어린이들이 왜 읽는 것을 배우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농담을 하셨다. 어린이들은 그냥 배운다. 장인은 우리 인간은 천성적으로 배우길 목말라 하고 특히 우리가 어릴 때는 어떻게 가르칠까를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유전적으로 뭔가를 열심히 배우도록 프로그램이 되어있어서 말릴 수가 없다. 학교라는 제도는 이 같은 내면의 능력을 부모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특정 분야- 일테면 읽기 쓰기, 기초적인 수학능력, 기초적인 사회이해, 기초적인 역사이해에 집중하도록 해준다.
그러나 그 방식은 배움을 렌즈가 영상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스스로 이끌고 스스로 동기를 부여해서 갑자기 학업성취도가 부쩍 올라가는 그런 공부가 신비한 일도, 비정상적인 일도 아니게 된다. 그것은 다만 인간이 자연스레 하는 것이다. 만일 살면서 부딪치는 너무 많은 일상적인 문제에 방해만 받지 않는다면.
위대한 과학자들이나 발명가들은 어른이 되어가는 길목에서 다른 사람들이 겪는 창조성에 대한 장애물을 만나지 않는 사람들로 보인다. 때로는 괴팍함과 결합한 덕분에. 그들은 스스로 게걸스럽게 배우는 자들이기도 하다. 토마스 에디슨은 교사가 산만하다고 평가해서 어머니가 집에서 교육을 시켰다. 그는 대학에 가지 않고 대신 문학책이나 과학책을 호기심 가는대로 읽었다.
빌 게이츠는 엄마가 공부하라는 것을 거절하고 마이크로 소프트를 만들기 위해 하버드를 중퇴했다. 아이작 뉴튼의 선생은 그를 매우 공부 못하는 학생으로 평가했으나 그의 끊이지 않는 공상과 그의 관심사를 꾸준히 기록한 것이 큰 일을 해냈다. 뉴튼은 혼자서 유클리드의 '원리'와 데카르트의 기하학을 숙독한 끝에 미적분을 창안했다.
불행하게도 이런 지적인 독립성은 현대 한국에서는 장애물이 많다. 우선 학교에서 '반드시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 부담스러운데다 국제어인 영어까지 익혀야 한다. 이것은 작은 나라들이 가질 수 밖에 없는 '창의성 세금' 이다. 만일 국제언어를 습득하는데 실패하면 어린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수입이 적다. 그래서 북동아시아에는 뉴튼과 에디슨이 드물다. 문화 때문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에너지를 언어를 배우는데 가장 많이 써야 하는데 따른 부작용이다.
대신 북동아시아의 예술가들은 언어습득에 많이 투자하지 않고도 성공한다. 작곡가 가와이 겐지는 '공각기동대'에 음악을 맡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일본에서는 그만의 텔레비전 쇼를 갖고 있다. 오토모 가츠히로는 '아키라'가 서양에서 인기를 끌면서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이 소개되는 문을 열었다.
몇 년 전 나는 '아키라'의 한 장면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 썼다가 반응이 좋길래 코단샤 출판사에 오토모씨와 서명본을 교환하자고 제안했으나 거절을 당했다. 시장에서 노벨상 수상자와 젊은 예술가의 값 차이를 알게 됐다.
이런 걸 보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의 교육열은 좋은 것만은 아니다. 경제활동에는 좋겠지만 다른 것에는 나쁘다. 기술과 창의적인 독창성을 필요로 할수록 나쁘다. 금융이나 반도체 연구와 같은 복합적인 업무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영화나 첨단과학 같은 예술적인 활동에는 불리하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고등학생들은 오직 최고의 대학에 입학하려고 공부를 하고 대학생은 오로지 시험을 잘 치려고 공부를 한다. 지적인 내용은 점수나 등수보다 덜 중요하다. 좋은 시험성적과 등수는 첫번째 직업은 보장해주겠지만 40년 동안의 경제생활을 지탱해주지는 않는다.
특히 가족부양을 위한 재정적인 책임이 최고조에 이른 후반생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경제는 너무 빨리 변해서 익힌 기술은 금새 쓸모없어져 버린다. 그래서 우리들 모두는 일생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얻는데 성실하고 꾸준하게 투자를 해야 한다.
비행기는 자리를 잡기까지 그 둔한 몸을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매우 우스꽝스럽다. 그러나 바퀴가 땅을 박차는 순간 비행기는 행복해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늘을 나르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두뇌와 몸도 이와 같다. 젊었을 때는 매우 이상하지만 어른으로 가는 시기가 오면 행복해진다.
왜냐하면 우리의 두뇌와 몸도 배우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 러플린 총장은
로버트 러플린 카이스트(KAIST) 총장은 1950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1979년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벨연구소를 거쳐 89년부터 스탠퍼드대 교수로 재직했다.
98년 '분수 양자홀 효과(fractional quantum hall effect 전자들이 극저온에서 강자기장이 걸리면 강하게 끌어당겨 일종의 유체처럼 행동하는 것)'라는 이론을 세워 현대물리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공로로 추이, 슈퇴르머와 공동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7월 국내 최초의 외국인 총장으로 KAIST에 부임한 그는 의대ㆍ법대대학원 진학을 위한 커리큘럼 신설, 금융전문대학원 설치 등 KAIST를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는 작곡에도 관심이 많으며 그림그리기도 좋아해서 최근 저서 '새로운 우주'의 삽화를 직접 그렸다.
왕태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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