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한센인들 힘내십시오.”
한센병 환자로 2001년 일본 정부 상대 배상재판에서 원고 전원승소를 이끌어낸 일본 한센병 원고단 사무국장 구니모토 마모루(78ㆍ國本衛)씨가 68년 만에 고국을 찾았다. 13일 서울 양천구 목동 한빛복지협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재일동포로 이위(李衛)라는 한국 이름을 갖고 있는 그는 “너무나 한국에 오고 싶었지만 한센병 환자라는 자괴감, 편견과 차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를 말렸다”고 했다. 2001년 구마모토(熊本)지법 한센병 원고 승소 판결로 ‘인간회복’을 실감한 뒤부터 한국을 다시 떠올렸다. 고국의 한센병 환자들도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아버지는 일제 수탈로 전남 광양의 집안이 몰락하면서 혈혈단신 바다를 건넜고, 1931년 네 살이던 이위는 어머니 등에 업혀 시모노세키(下關)로 뒤따라가 구니모토가 됐다.
1941년 14세 때 한센병에 걸려 전생병원(현 일본국립요양소 다마전생원)에 강제 수용됐다. 1907년 제정된 ‘나(癩)예방법’에 따라 일본 내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격리된 것이다. 식민지 조국에서는 환자들이 소록도로 격리됐다.
가족은 잊어야 했다. 가족 중 한명이 한센병에 걸리면 경찰과 위생소에서 집 전체를 조사하고 소독하는 바람에 소문이 퍼져 가족 전체가 그 동네에서 살 수가 없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나는 가족이 아니어야 했습니다.”
재일 한국인이었기에 이중적 차별에 시달려야만 했다. 1959년 일본에서 국민연금법이 시행됐지만 재일 한국인은 제외됐다. 세금은 꼬박 냈지만 복지혜택은 받을 수 없었다.
그 후 치료약이 나오고 전염이 안 된다는 것이 입증돼 유럽에서는 53년, 한국에서는 63년에 격리정책이 폐지됐지만 일본에서는 96년에야 폐지됐다.
이후 그는 다른 환자, 시민단체 등과 함께 99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고 결국 승리했다. 원고들의 대표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를 면담, 일본 정부가 항소를 포기한다는 약속까지 받아냈다.
그는 아직 할 일이 남았다고 한다. “일본인에 대한 배상 문제는 마무리 됐지만 일제강점 하에 있었던 한국과 대만 등 다른 나라 환자들의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10월 한국 한센인들에게 내린 일본 법원의 패소 판결이 “일본 내 한센인, 대만의 한센인들에 대한 판결과 다른 일관성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한센인도 일본인과 같이 평등하게 배상 받을 수 있도록 일본 후생노동성에 요구하고 있다”며 “소록도 시설은 일본 천황의 칙령으로 만들어진 곳임을 일본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와 국민에 대한 부탁도 잊지 않았다. “10월 재판 이후 판결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한국 내 시위가 일본 국민과 정치인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어요. 외교적 압박을 위해 한국 정부측의 보상이 먼저 이뤄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13일 오후 6시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자서전 ‘사는 날, 타오르는 날’(브레이크미디어 발행) 출판기념회를 가진 그는 14일 일본으로 돌아간다.
박상진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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