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학(風水學)은 전통시대의 자연관을 잘 보여주는 사상입니다. 단지 길흉(吉凶)을 점치거나 복(福)을 구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선조들이 우리의 자연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어떻게 거기에 적응해 살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물이니까요.”
전북 우석대 김두규(46) 교수는 독문학에서 풍수학으로 전공을 바꾼 이력이 독특한 학자다. 한국외국어대 독어과를 졸업하고 “19세기 독일 농민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건너간 그는 1991년 독일 뮌스터대에서 ‘민중성과 리얼리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한 뒤 시간강사 생활을 3년 만에 마감하고 94년 우석대에 임용될 때도 대학에서 그에게 요구했던 것은 “독문학과 개설 준비”였다.
하지만 그 후 학부제 바람이 불었고, 학생들이 지원을 꺼리는 독문학과의 설립은 대학도, 김 교수 자신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버렸다. 마침 취미 삼았던 풍수학 공부를 바탕으로 지역 신문에 칼럼 연재한 것을 보고 대학에서 교양 강좌로 “풍수학을 가르치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풍수지리의 이해’라는 첫 강의에 무려 1,500명이 넘는 학생이 수강 신청해 300명 정도로 줄이느라고 고생했다”는 그는 ‘서양문학감상’이라는 제목으로 괴테 등 문호들의 작품세계를 설명하는 독문학 강의도 이어왔지만 2000년 전공전환신청 이후부터는 풍수학 강의만 전담하고 있다.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풍수학을 대학 강단에서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아직 어려운 일이다. 중국 전국시대에 시작돼 우리나라에 흘러 들어온 이 사상은 조선시대까지도 엄연히 중인 음양과 시험과목이었지만 지금은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강단에서 금기한다. 지관(地官)을 위한 ‘기술’ 정도로 여기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김 교수가 최근 낸 ‘풍수학 사전’(비봉출판사 발행)은 학계의 이런 고정관념을 뒤바꿀만한 책이다. 전통시대의 풍수 사상에서 쓰던 용어의 뜻은 무엇이며, 어디서 유래했으며, 시대에 따라 의미가 어떻게 변했는지 낱낱이 찾아서 밝힌 800쪽이 넘는 이 책은 풍수학이 어엿하게 전통사상으로 정립할 가능성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풍수학의 고전을 읽고 공부하면서, 또 예닐곱 종의 풍수 책을 쓰면서 그때그때 용어 정리해두었던 원고를 모으고, 보충해서 사전을 냈다”는 그는 “한반도의 풍수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데 초점을 두었다”고 말했다.
사전의 토대가 된 1차 자료는 조선의 풍수서인 ‘청오경’ ‘장서’ ‘호순신’ ‘명산론’ ‘감룡경’ ‘의룡경’ ‘탁옥부’과 조선왕조실록에 자주 언급되는 풍수관련 내용 들이다. 고려에서도 풍수학이 성했으나 관련 서적들이 전하지 않아 ‘고려사’ 등의 풍수관련 용어를 참고했다고 한다.
“풍수는 자연지형의 규모나 형태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어서, 중국과 우리는 완전히 다른 풍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도읍을 서울처럼 산으로 둘러싼 곳으로 정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거든요.
전쟁이 나서 에워싸버리면 오도가도 못하는 곳이 될 가능성이 크니까요.” ‘제왕을 잇는 혈’이 될 수 있어 고금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용(龍)’의 맥을 살피는 ‘간룡법(看龍法)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이 개념이 중국의 민산, 서령, 곤륜, 백두산을 토대로 했다고 밝히면서, 이 방식이 유교의 종법과 유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특정한 자리의 기가 어떤 것이며 그에 상응하여 어떠한 인물이 나올 것이냐’를 따지는 물형론(物形論)은 아예 별도의 장을 두어서 따로 풀이했다. 세간의 관심도 관심이려니와 이 판별법은 자의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의 명당’이라는 와우형(臥牛形)은 ‘소가 옆으로 누워서 한가로이 되새김질을 하는 것처럼 자자손손 누워서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부자가 되지만 자손 수는 적다’는 자리, 무덤 풍수에서 ‘솥을 엎어놓은 모양’인 부형(釜形)이나 복부형(伏釜形)의 땅에 조상의 묘를 쓰면 반드시 부귀를 누린다는 식으로 땅의 형세를 그림과 함께 설명했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후보들의 선영과 생가터를 조사해 노무현 대통령의 “기가 가장 세다”고 분석해서 화제를 낳았던 그는 “청계천 복원이나 행정중심도시 이전 결정은 풍수로 봐서는 마땅히 잘 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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