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서자면 모든 선진국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도 어차피 성장 전략을 자본과 노동의 투입 위주에서 지식과 기술의 수준 상승이라는 질적 성장 전략으로 바꾸지 않을 수 없다. 질적 성장 전략의 핵심은 역시 인적자원의 개발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은 사회의 인적자원 개발을 주도하는 기관이며 한국은 특히 국립대학들이 선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2005년 현재 24개의 종합대학, 8개의 산업대학, 11개의 교육대학과 5개의 전문대학을 국가가 운영하고 있으며 학생 정원은 무려 36만 명이다.
현재 한국의 대학의 문제는 양적인 성장만큼 질적인 성장이 수반되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 산업현장과 유리된 교육, 낮은 국제경쟁력, 지역 간 불균형, 고학력 실업의 급증뿐만 아니라 신입생 미충원율의 증가라는 구조적인 문제점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현재의 대학입학정원 66만 5,000 명인데 비하여 2020년의 고교졸업자 수는 48만 7,000 명으로 추산돼 대학 정원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약 15년 후에는 입학 정원 1,000명 정도 되는 대학 170개교가 문을 닫아야 한다. 이로 인해 발생할 극심한 혼란과 경쟁과 낭비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한국 고등교육의 질적 성장을 이끌어가는 데도 국립대학의 역할이 크게 기대된다. 무엇보다도 국제적 경쟁력을 가진 대학을 만드는 데 있어서 국립대학이 앞장서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조개혁에서도 시장 논리를 따르게 될 사립대학보다 재정을 국가가 책임지고 있는 국립대학이 훨씬 더 용이하다고 볼 수 있다.
규모의 경제, 특성화 및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구조개혁의 기본 전략을 생각해 볼 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권역별 국립대학의 통합’ 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대와 같은 대학을 권역별로 하나씩 육성하는 전략이다. 전국의 48개 국립대학 중에서 특성화된 전문대학을 제외한 43개 종합대학, 산업대학, 교육대학들을 10개 권역별로 1개의 지역중심대학으로 통합하는 정책을 의미한다.
목표는 2020년까지 이 10개 지역 중심대학들의 수준을 현재의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현재 23명인 교수 1인당 학생 수를 15명으로, 평균 885만 원인 학생 1인당 연간 교육비를 현재 서울대 수준인 2,6000만 원으로 책정할 수 있다.
국립대 입학 총정원은 8만 5,000 명에서 6만 명 정도로 축소되며 국립대의 총예산규모는 현재의 3조 원에서 6조 원 정도로 배가되어야 한다. 그다지 파격적인 비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러한 비전이 법제화되어야 한다는 데 있다. 사실상 지금까지 추진되어온 교육부의 정책적 비전은 필자의 생각과 별로 다를 바 없었다. 단지 법제화가 아니라 인센티브의 부여라는 간접적인 방법을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방법은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국가적 비전의 제시나 인센티브의 부여 정도로는 이와 같은 대폭적인 구조개혁을 달성하기에 매우 부족하다.
대한민국 국회가 이러한 처지를 직시하고 ‘권역별 국립대학 통합’ 안의 법제화에 나서고 있는 것은 크게 다행한 일이다. 특히 이 방안은 국립대학구조개혁을 추진한 현장 경험에서 나온 ‘아래로부터의 개혁’ 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으며 여타의 우회적 방안이 초래할 혼란과 낭비를 미리 방지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백종국 경상대 정치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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