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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에서] 그늘을 들여다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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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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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에 관한 한 정부 여당은 큰 소리를 쳐왔다. 시각 차이는 있었지만 여당과 대통령에 대한 낮은 지지도, 집권층 주변의 불미스러운 스캔들, 전반적인 사회분열 현상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경제와 관련해 쏟아지는 지적이나 비판에 대해선 ‘경제가 안 되고 있다는 근거를 대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일자리 창출 부진, 실업 증가, 체감경기 냉각 등의 실상이 엄연한데도 ‘경제에 올인 하라’ ‘민생에 중점을 두라’는 주문에 대한 정부 태도는 ‘너나 잘 하세요’였다.

●정부, 경제지표만 믿고 우쭐해서야

정부는 두 자릿수 수출증가세, 4% 이상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활황의 불꽃이 넘실대는 증시 등 각종 실적과 지표를 경제에 문제가 없다는 근거로 내세운다.

대통령이 각종 회의에서 경제현안을 다루고 자주 산업현장을 방문하는 등 경제문제에 천착하는데도 언론이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딴죽만 건다고 불평한다. 언론이 대통령의 경제에 쏟는 관심과 활동을 외면하는 탓에 정부가 경제에 소홀한 것처럼 비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은의 ‘3ㆍ4분기 국민소득’조사는 정부가 철썩 같이 믿는 실적과 지표가 실제 민생과는 괴리됐음을 보여준다. 국민의 실질구매력을 나타내는 실질 국민총소득(GNI) 증가율이 지난해 3ㆍ4분기 3.6%, 4ㆍ4분기 2.3%에서 올 1ㆍ4분기 0.5%, 2ㆍ4분기 0.0%, 3ㆍ4분기 0.1%로 사실상 정체상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주장과 달리 국민생활은 거의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경제성장과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응답이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광복6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공정한 분배를 우선해야 한다’는 분배론(41.0%)보다 ‘경제성장을 우선해야 한다’는 성장론(59.0%) 지지자가 더 많았고 과거청산(22.3%)보다는 사회안정(77.7%)을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가 실시한 국민의식조사에서도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어떤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84.6%가 경제발전을 꼽았다.

YMCA와 국무총리실 산하 청소년위원회가 세대별 인식차이를 알아보기 위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앞으로 5년 뒤에는 지금보다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는 문항에 30대가 6점 만점에 3.74로 응답해 다소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 반면 10대는 3.47로 가장 낮았고 20대 3.58, 40대 3.62, 50대이상 3.69를 기록했다. 가장 희망에 차있어야 할 10~20대가 미래를 어둡게 보고 있는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가 마치 분배와 개혁, 민주주의가 덜 중요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함정을 갖고 있지만 대다수 국민들이 경제성장과 사회안정이 시급하다고 여기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런데도 총리는 “현재 우리나라는 1988년 이후 구조적으로나 현상적으로 가장 안정된 시기”라고 말하니 국민은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내년 성장률이 5.0% 수준으로 전망되는 등 내년 경제상황이 호전될 것이라고 한다. 정부도 이런 전망을 바탕으로 내년 경제운용계획을 마련 중이다. 국민 모두가 반길 일임에도 언론이 신중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자칫 정부가 경제 전반이 잘 돌아가는 것으로 착각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국민은 분배보다 성장을 원한다

경제현상을 보는 정부와 언론의 눈은 생리상 다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양지의 실적과 지표를 강조하려 하지만, 언론은 음지에 초점을 맞추기 마련이다. 이를 왜곡이라고 비난한다면 억지다. 양지의 모습만 가지고 전체를 호도해서는 안 된다. 넓고 깊은 그늘에 가려진 민생을 헤아려 온기를 불어넣고 삶의 의지를 북돋우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첫째도 둘째도 일자리 창출’을 외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를 다시 보게 되는 것은 아무리 선진국이라 해도 국민 개개인의 소득 향상 없이는 어떤 선의의 개혁이나 제도도 무용지물임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정부는 보다 차분해져야 한다. 언론이 칭찬에 인색하다고 서운해 할 일도, 비판이 심하다고 핏대를 세울 일이 아니다. 양지보다는 음지를 들여다보는 것이 바로 민생을 챙기는 일이다.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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