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은 어린 조카의 보상금을 가로채고 상습적으로 폭행한 ‘인면수심’의 삼촌과 숙모가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대구경찰청은 9일 입양한 조카 A(13ㆍ중2)양의 재산 대부분을 가로채고 상습폭행한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김모(43ㆍ대구 수성구)씨를 구속하고 김씨의 부인 이모(38)씨를 같은 혐의로 불구속입건했다.
A양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2001년 2월. 단란했던 4식구가 함께 교통사고를 당해 부모와 오빠는 사망하고 9살이던 A양만 혼자 살아 남았다. 교통사고 피해로 9억3,000여만원의 보상금이 나왔다.
당시 보험사에 다니던 삼촌 김씨는 보상금 중 3억5,000만원을 A양의 장래를 위한다며 보험에 들고 A양을 입양했고, 나머지 돈은 김씨와 A양의 조부, 외조부와 3등분해 1억9,000만원씩 나눠 가졌다.
김씨는 A양을 입양한 1년 후 법적 친권자임을 내세워 A양 명의로 된 보험을 모두 해약했고, 조부에게서 추가로 8,000만원까지 받아내는 등 6억2,000여만원을 챙겼다.
김씨는 이 돈으로 대구 수성구에 50평짜리 아파트를 구입하고 주식에 투자를 했다. 하지만 주식투자에서 손해를 보면서 지난해 8월까지 채무변제 등에 대부분의 돈을 탕진했다.
이때부서 A양에게는 악몽의 나날이 이어졌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삼촌 김씨와 숙모 이씨는 A양이 밥을 빨리 먹지 않는다고 초시계와 회초리를 꺼내놓고 “한 숟가락에 1초씩 빨리 먹어라. 1초를 넘길 때마다 10대씩 맞는다”며 윽박지르고, 말을 듣지 않는다며 베란다에서 무릎을 꿇리고 옷을 벗겨 엎드리게 했다.
숙모는 A양이 지쳐 넘어지자 허벅지를 마구 때리고 부엌칼을 무릎 아래에 세워놓아 쓰러지지 못하게 했다. A양이 울며 용서를 빌자 수건을 입 속에 넣고 테이프로 붙여 소리가 새어나가지 못하게도 했다.
이후에도 김씨 부부는 온갖 트집을 잡아 A양을 밤에 잠옷바람으로 밖으로 내쫓았으며, 토한 음식을 강제로 먹이기까지 했다. 뒷머리를 심하게 맞아 A양은 일주일 내내 베개를 벨 수 없을 정도였다.
견디다 못한 A양은 여러 차례 가출했고, 이를 보다 못한 외사촌 형제들이 아동학대예방센터에 신고하면서 실상이 드러나게 됐다.
경찰은 “김씨 부부가 어린 조카의 돈을 모두 강탈하고 심한 학대를 했지만 친족간 재산범죄는 형사처벌을 할 수 없다는 ‘친족상도례’ 조항 때문에 아동학대 혐의 밖에 적용할 방법이 없다”면서 “전문변호사를 알선해 조부에게 넘어간 유족연금 수급권을 되찾는 등 A양을 도울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대구지검특수부는 "당초 경찰이 삼촌의 유산강탈 부분은 도외시한 채 숙모만 아동학대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숙모가 갑자기 A양을 학대한 경위가 불분명해 보강수사를 지휘했다"며 "추가 조사가 없었다면 조카의 유산을 탕진하고 그 때부터 인면수심의 잔혹행위를 한 사실이 묻혀 숙모만 불구속돼 가벼운 처벌을 받고 말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정광진 기자 kjche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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