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수용소가 있다는 건가, 없다는 건가.’
대서양 양안의 뜨거운 현안이 된 유럽 내 비밀수용소 설치 논란에 대해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핵심을 비켜가는 애매한 화법으로 일관하자 제기되는 비난이다.
유럽을 순방중인 라이스 장관은 이 문제에 대한 유럽의 반발이 예상외로 거세자 인권과 고문에 대한 미국 정부의 원칙론만을 되풀이하며 ‘일단 쏟아지는 화살은 피하고 보자’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비밀수용소 논란을 인권에 대한 일반론을 앞세워 물타기 하겠다는 속셈이다.
7일 벨기에 브뤼셀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본부에서 열린 나토 외무장관과의 비공식 만찬에서 라이스는 “미국의 인권정책은 국제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고문에 반대한다는 미국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고 언급했다. 라이스의 발언 뒤 야프 데 후프 스헤페르 나토 사무총장을 비롯한 일부 유럽 외무장관들은 “라이스 장관이 의혹을 해소했다”며 “더 이상 이 문제는 거론되지 않을 것”이라는 환영의 뜻을 표했다.
그러나 이날 만찬에서 유럽 내 비밀수용소 설치 여부, 테러용의자에 대한 처우 등 핵심적인 문제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라이스 장관은 폭력이나 생명에의 위협 등 심문 과정에서의 강압적 행위가 고문에 포함되는지, 고문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의하는지, 이 같은 입장이 정부 뿐아니라 민간업자, 심문 업무를 위탁받은 외국인에도 적용되는지 등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라이스의 발언은 인권과 고문에 대한 미국 정부의 해석이 지나치게 자의적이라는 유럽의 비난을 무마하기 위한 제스처라는 시각이 팽배하다.
캐나다 대법관 출신의 루이스 아버 유엔고등인권판무관은 이날 “신체의 고결함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절대적 대원칙이 테러와의 전쟁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미국 정부를 강력 비판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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