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이후 5공 때까지 대통령선거는 ‘체육관 선거’로 불렸다. 관변 인사들로 구성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체육관에 모여 거수기 노릇을 했다. 단독후보에 100%에 가까운 지지율.
북한의 공개투표와 다를 바 없었다. 6공 정권 들어 이런 후진적인 선거는 없어졌다. 1987년 6.10항쟁이 쟁취한 직선제 개헌의 결과다. 적어도 절차나 제도적 차원에서의 민주주의는 성공한 듯했다. 그러나 그 후의 선거를 좌우한 건 날선 지역주의였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노무현 대통령도 지역주의를 이용해 당선됐다. 우리가 그토록 추구해온 민주화는 여전히 반쪽짜리에 머물러있다.
나머지 반쪽을 요즘의 극단적인 이념대립에서 찾는다. 역설적이지만 노무현 정권이 가장 잘한 일은 이념갈등을 끊임없이 생산한 일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어설픈 이념편향이 국론을 분열시킨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허리띠를 졸라매도 국제사회에서 경쟁을 뚫고 이겨나가기 힘든 데 무슨 낡아빠진 이념 투쟁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냉철히 따져보자. 언제 우리 사회가 이념을 띤 정책을 놓고 이렇듯 격렬한 논의를 해본 적이 있던가.
오히려 과거 이런 치열한 이념논쟁이 없었던 게 죽고 살기식 갈등을 빚는 원인 아닌가. 성장과 분배논쟁, 비정규직 법안을 비롯한 노사문제, 부동산정책, 세금인하 논쟁, 재벌정책, 외국금융 규제는 어떤가. 북한인권, 환경과 개발논쟁, 양심적 병역거부, 사형제도, 사립학교법, 심지어 고교평준화와 대입 본고사 부활 논란은 또 어떤가.
지난 50여년의 대부분은 반공과 개발독재로 무장한 우파가 절대적 우월성을 가졌다. 1980년 5ㆍ18이후 고개를 들기 시작한 좌파세력이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선 건 불과 10여년 전인 김영삼 정권 때부터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 들어 활짝 만개했다. 이념과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수많은 민감한 과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잠복해있다 때맞춰 한꺼번에 분출된 것이다. 사회가 한 단계 발전하고 변화하기 위해서는 언젠가 부닥쳐야 할 것들이다.
더 이상 미룰 수도, 외면해서도 안 된다. 이런 논쟁을 통해서 좌든 우든, 공감대를 형성하고 사회통합을 이룬다면 꺼릴 이유가 없지 않을까.
문제는 정치권이나 현 정부가 이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최근 마련한 신강령을 보면 중도노선이 뚜렷해졌다. 우리당은 우향우를 하고 한나라당은 좌향좌로 발걸음을 옮겨 이념적 차이가 엷어졌다. 각론으로 들어가도 큰 차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게 여야의 이념과 색깔이 비슷한데 실제 해결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게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대선을 앞두고 40% 정도로 분류되는 중도파 유권자를 겨냥한 꼼수일 뿐이다. 국민을 우롱하고 기만하는 행위다. 유럽 각국 정당들이 최근 중도로 지향하는 것에 비춰 언뜻 바람직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100년 이상 치열한 이념논쟁을 벌여온 유럽과 그런 뿌리가 전혀 없는 우리와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노선이나 이념의 이론적 토대나 인식수준은 말할 것도 없다.
정치권은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지향하는 좌표가 무언지, 어떤 이념으로 산적한 정책현안을 해결할지를 명쾌히 제시해야 한다.
지향하는 이념이 보수주의인지, 중도자유인지, 시장민주주의인지, 사회민주주의인지, 시장사회민주주의인지를 명확히 하라는 것이다. 어정쩡한 이념적 좌표에 색깔도 제대로 없는 정당은 민주주의 발전을 더디게 할 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혼란과 혼돈 속으로 밀어넣을 뿐이다.
2년 후의 대선은 정책과 색깔이 당락을 가르는 요인이 돼야 한다. 유권자들이 정책으로 정당을 심판하고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그리고 새 정권은 그 지지를 토대로 산적한 현안을 해결해야 한다.
골수까지 박힌 지역주의와 그만저만한 인물끼리의 도토리 키재기 경쟁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정치권은 보다 치열하고 깊이 있는 이념논쟁과 정책개발에 몰두하라. 그 게 민주주의를 성숙시키고 경제도 살리는 길이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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