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과거사위의 조사결과, 중앙정보부는 인혁당 사건 조작을 위해 북파간첩을 남파간첩으로 둔갑시키기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 동아대 철학과 교수 출신인 김상한(1919년생)씨는 김영춘이라는 남파간첩으로 1964년 발표됐다. 그는 인혁당 창당발기 모임에서 사회를 보고, 이후 월북해 창당보고를 한 것으로 돼있다. 그러나 국정원 과거사위가 찾아낸 ‘김상한 월북사건 진상조사 보고’에 따르면 김씨는 국내 첩보부대에서 북파공작원으로 월북시킨 인물로 파악됐다.
과거사위는 1차 인혁당 발표 때 중정이 적어도 그가 남파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은 파악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중정은 이후 김씨가 북파공작원이라는 사실을 파악했으나 2차 인혁당 사건 등에서 거듭 그를 남파간첩으로 조작해 발표했다.
과거사위는 1차 인혁당의 실체를 “서클 형태의 모임으로, 장차 합법화될 혁신정당에 대비해 혁신계 청년들의 통합을 논의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인민혁명당이라는 이름은 여러 명칭 중 하나로 잠시 언급됐고 강령ㆍ규약도 논의는 있었지만 채택된 적은 없었다.
1974년 민청학련과 2차 인혁당 사건의 조작과정을 보여주는 문건도 발견됐다. ‘민청학련 사건 관련 일본인에 대한 수사지침’에 따르면 범죄요건에 배치되는 부분은 삭제하라고 명시돼 있다. 이에 따라 서울대생 유인태에게 일본인 다찌가와(太刀川)씨가 준 7,500원은 ‘취재에 대한 사례비’에서 ‘사회주의 폭력혁명을 위한 기금’으로 둔갑했다. 이 진술조작에 적극 관여한 통역인은 이후 중정 직원으로 특채됐다. 과거사위는 민청학련의 성격을 “반유신투쟁을 위한 학생들의 연락망 수준의 조직”이라고 설명했다.
8명의 사법살인으로 이어진 2차 인혁당 조작사건은 특별히 새롭다고 할만한 증거들이 나오지 않았다.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민간단체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 정부기관의 조사로 상당한 조작ㆍ고문 증거들이 드러난 상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