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PD수첩’의 어긋난 취재방식이 거의 전 국민적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자의 칼럼, 학자의 고언, 그리고 네티즌들의 분노를 보며 마음속으로 맞장구를 치기도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 하나가 있다. 누가 이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진실에 대한 열의로 포장된 취재욕은 그 동안 많은 언론인들을 넘지 말아야 할 선 바깥으로 밀어냈다. 특종한 기자들의 무용담은 종종 불법과 편법의 집대성이 되기도 했고, 취재원에 대한 (공갈 협박까지는 아니더라도) 무례와 기만은 사실 규명을 위해 당연히 감수될 수 있는 사소함으로 여겨졌다.
독자와 시청자들도 대다수가 박수를 쳐왔다. 테이블 아래 다리만 비춰주는 몰래카메라는 프로그램 구성의 ‘당연한’ 요소가 됐다. 거기에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오히려 진실을 보았다며 흐뭇해 했다.
가끔씩은 위험을 감수하며 몰래 촬영이나 녹음을 해 온 이들에게 격려를 보내기도 했다.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구현한다는 명분이 있기에 그깟 취재윤리 정도는 눈감아 주는 것이 예의라 생각했다.
세상이 바뀌었다. 수 십 년간 서서히 변해왔고, 또 최근 일주일 사이에 혁명적으로 변했다. 그런데 사과와 반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사실은 나도 취재과정에서 거짓말도 하고 은근히 공갈도 쳐보았다며 반성하는 기자가 없다.
똑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진 과거의 ‘정의로운’ ‘PD수첩’에 열광했었음을 반성하는 네티즌도 많지 않다. 시체와 다름없는 MBC에 돌 하나를 더 던지면서 모두가 스스로에 대한 윤리적 합리화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과학사와 언론사에 공히 길이 남을 이번 ‘PD수첩’ 사건은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불법도청이라도 진실을 위해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고 소리 높이던 사람이 비윤리적 취재에 의한 내용은 원천무효라 한다. 외국 학자들의 한국사 왜곡을 파헤친 기자에게는 무한한 존경심을 보이면서 기자는 전문성이 없으니 과학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지 말란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네티즌들의 분노를 철없는 포퓰리즘이라 일갈 하던 사람이 MBC 폐지운동은 성숙한 시민들의 정당한 운동이라 평가한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대통령도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던 사람이 국민적 영웅인 황우석 박사의 업적을 훼손하려는 시도는 좌시할 수 없다며 흥분한다.
대통령은 역시 제대로 된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이 해야 한다고 강변하던 사람이 국내파 수의학자가 해외파 의학교수들에게 온당치 못한 견제를 당한다며 걱정한다. 이 사람들은 기자이기도 하고 정치인이기도 하다. 학자이기도 하고 평범한 네티즌이기도 하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이기도 하다.
반성하고, 또 차분하게 정리를 하자. 그동안 ‘PD수첩’의 존재 근거는 사명감에 대한 대중의 지지였다. 그러나 윤리적 부당함이 대중의 비난을 낳고 심지어 나머지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음을 깨달았기 바란다. MBC는 내부 통제시스템의 부재와 제작진에 대한 무책임한 신뢰가 회사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음을 깨달았기 바란다.
신문사들은 엠바고 파기같은 문제를 일으키거나 영웅 만들기에만 몰두하지 말고 막대한 국민세금이 들어간 황 교수 사업에 애정과 진지함이 있는 비판을 잃지 말기를 바란다. 특히 툭하면 무슨 의혹 하나를 던져놓고 “당사자가 이런 의혹을 밝혀라”고 떼를 쓰는 일부 신문들의 행태도 이번 기회에 없어지기를 기대한다.
‘PD수첩’ 제작진의 가족사진까지 돌려대는 일부 네티즌들도 자신들의 윤리의식 또한 얼마나 치졸한 수준인지 깨달았기를 기대한다.
할 일이 많고 갈 길이 멀다. 국제적 수준의 연구진이라면 국제적 기준의 윤리 코드를 무겁게 인식해야 한다. ‘PD수첩’에 대한 비난이 이 당위마저 덮어서는 안 된다.
정의를 좇는 언론인이라면 PD건 방송기자건 신문기자건 모두 성실하고 전문적인 직업윤리를 잃지 말아야 한다. 돌을 던지는 자, 맞는 자 모두 분노하거나 억울해 말고 무슨 일을 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하는 기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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