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과거사건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과거사위)는 7일 1ㆍ2차 인민혁명당(인혁당) 및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 사건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수사방향이 미리 결정돼 사건이 조작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과거사위는 또 1975년 4월9일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 집행이 형 확정 후 18시간만에 이뤄진 것도 박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결론 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과거사위는 이에 관한 구체적인 물증을 제시하자 않아 논란의 소지를 남겼다.
과거사위는 이날 국정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964년 1차 인혁당과 1974년 2차 인혁당 및 민청학련 사건에 대한 이 같은 내용의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과거사위는 “당시 학생시위로 인한 정권의 위기상황을 맞아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박 대통령과 중앙정보부장의 특별 담화문을 통해 사건의 실체가 과장된 채 발표됐다”며 “이에 따라 사건의 성격이 규정됐고, 이것이 수사지침이 돼 중정이 짜 맞추기 수사를 해 이들 단체를 무리하게 반국가단체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과거사위는 또 “수사과정에서 불리한 진술을 강요하거나 핵심 인물들의 소재를 찾기 위해 고문이나 가혹행위도 자행됐다”고 말했다.
과거사위는 특히 인혁당 재건위(2차 인혁당)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집행에 대해 “사전에 국방부와 법무부 등의 협조가 있어야만 집행될 수 있다는 점에 비춰 대법원 확정판결 즉시 처형한다는 방침은 이미 청와대 선에서 정해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과거사위는 그러나 “이를 확인할 문서나 증언은 없었다”고 말했다.
과거사위는 1차 인혁당 사건과 관련, “강령과 규약이 채택된 적이 없고 당 수준에 이르지 못한 서클 형태였던 만큼 인혁당이 국가변란을 기도한 반국가단체로 실재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민청학련도 반국가단체가 아니라 반유신투쟁을 위한 학생들의 연락망 수준의 조직에 불과했고,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조직 결성을 뒷받침할 물증이 부족할 뿐 아니라 국가전복기도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할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과거사위는 이어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적절한 조치가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과거사위는 김대중 납치사건 조사를 위해 15일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직접 면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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