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矛盾)이란 말이 있다. 두 사실이 서로 배척하여 양립할 수 없는 관계를 말한다. ‘한비자’에 실려 있는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초나라에 방패와 창을 파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방패를 들고 “내 방패는 견고하여 어떤 창도 뚫을 수 없다”고 자랑했다. 또 창을 들고서는 “내 창은 예리하여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다”고 자랑했다. 이 말을 듣고 누군가가 나서서 말했다. “그럼 그 창으로 그 방패를 한번 뚫어보면 어떻겠소.” 상인은 그만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요(堯)와 순(舜)을 표적으로 한 것이다. 이른바 ‘요순시절’은 중국 고대의 이상적인 태평성대였다고 하는데, 한비자가 보기에 이것이 참으로 ‘모순’이었다.
만약 순이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고 감화시켰다고 하면, 그것은 그전 임금인 요는 그러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또 요가 이상적 통치자였다면 순이 사람들을 교화시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니 둘 중 하나는 성군(聖君)으로 추앙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한비자의 말을 맹자의 다음과 같은 말과 함께 보면 매우 흥미롭다. “화살 만드는 사람이 어찌 갑옷 만드는 사람보다 인(仁)하지 못 하겠는가마는, 화살 만드는 사람은 혹시 사람을 상하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갑옷 만드는 사람은 혹시 사람을 상할까 두려워하나니, 무당과 관 만드는 목수도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직업을 선택함에 삼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부연하면, 사람마다 어진 마음이 있으니 화살 만드는 사람의 본심이 어찌 갑옷 만드는 사람보다 어질지 않겠는가?
그러나 화살을 만들고 갑옷을 만드는 마음만을 갖고 말하면 한쪽은 그 화살이 날카롭지 않아서 사람을 해치지 못할까를 두려워하고 다른 쪽은 그 갑옷이 견고하지 않아서 사람을 상하게 할까 두려워한다. 그렇다고 화살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갑옷 만드는 사람보다 어질지 않아서 그러하겠는가? 직업의 속성이 그렇다는 것이다.
유추해보면, 무당이 사람 살기를 이롭게 여기는 것과 관 만드는 목수가 사람 죽는 것을 이롭게 여기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맹자가 느낀 바는 사람은 직업을 삼가고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와 한비자는 유사한 두 물건을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했는데, 그 방향과 의도는 아주 다르다. 똑같은 사물이나 현상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것은 제각각인가 보다.
박성진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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