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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소설 극화 '손님'/ 전쟁·욕망… 무대위에 펼쳐진 지독한 유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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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소설 극화 '손님'/ 전쟁·욕망… 무대위에 펼쳐진 지독한 유산들

입력
2005.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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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우리 발목을 잡는 수렁인가, 아니면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디딤대인가?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현대사 의미 규정 작업에서 연극은 특유의 기동성으로 무슨 답을 내릴 것인가?

두 편의 답안지가 작성됐다. 원작의 무게가 관심에 값하기 족하다. 황석영의 소설 ‘손님’을 극화한 극단 연우무대의 연극, 중견 극작가 이강백의 대체 역사극 ‘마르고 닳도록’.

“여기 사람덜언 다 나를 미워해.” 요한의 말이다.“난 내가 왜 죽었는지 모르가서….” 옆에 있던 일랑이 거든다. 수더분한 함경도 사투리가 곰살궂다. 격동의 소용돌이 끝에 이승과의 인연은 끊어져 혼백만 남은 영들이 내뱉는 말이다.

한국 전쟁의 비극을 여러 각도에서 고찰한 ‘손님’은 상잔의 비극을 한바탕 역병에 비유한다. 손님이란 제목은 천연두에다 손님 또는 마마라 부르며 ‘손님굿’이라는 무속 제의를 만들어낸 조선 민중의 대응 양식을 격동의 현대사에 투영한다.

작품의 발단은 전쟁 중 황해도 신천에서 좌우 이념 대립으로 벌어진 학살 사건의 근원을 찾아 간다. 죽이고 죽은 자들이 혼백이 돼 나와 못다한 이야기들을 펼친다. 즉 전쟁은 종교나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과 원한이 불러낸 폭력과 광기에 불과하다는 것.

이 연극은 첫째날인 2일 공연 직후, 주인공이 앞장 서고 용인대 국악과 학생들이 흥겨운 국악 연주를 펼치는 가운데 해원 길놀이를 펼쳐 길 떠남을 성대하게 알렸다. 범국민위원회,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나라사랑 청년회, 천주교 서울대교구 민족 화해 위원회 산하 ‘새터민’, 민족화합협의회 회원 등 관련자들도 참가, 공연의 의미를 새긴 자리였다.

각색ㆍ연출자 윤광진씨는 “1년 동안 한국전에 관한 각종 자료를 참고, 20여 차례의 수정을 거쳤다”며 “강정구 파동과 맥아더 동상 사건 등 우리 내부에 엄존하는 분열과 반목에 대해 화해와 용서, 그리고 위로를 바라는 심정”이라고 밝혔다. 전성환 예수정 한명구 등 출연. 11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 화~금 오후 8시, 토ㆍ일 3시 6시. (02)762-0010

한편 극단 차이무는 애국가의 저작료에 눈독을 들인 스페인 마피아들의 좌충우돌을 그린 가상 역사극 ‘마르고 닳도록’으로 역사와 현재의 관계를 규명한다. ‘차원 이동 무대’라는 극단 본래의 이름값을 하는 셈이다.

애국가의 작곡자 안익태 선생이 스페인에서 살다 1965년 사망하자, 애국가의 막대한 저작료에 눈독을 들인 스페인 마피아들이 저작료를 챙기겠다며 한국 땅을 밟는다. 그러나 한국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마피아들은 비명에 가고,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데모와 최루탄에 쫓겨 뜻을 이루지 못 한다. 이제 늙고 병든 마피아들은 그러나 마르고 닳도록 저작권 포기를 못 하며 호시탐탐 노린다. 앙상블 속에서 좌충우돌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볼거리.

한편 실제로 인터넷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던 애국가 저작료 문제는 지난 3월 안익태 선생의 유족이 그 저작권을 무상으로 대한민국 정부에 양도함으로써 해결됐다.

이상우가 연출하고, 문성근 박광정 강신일 등 극단 연우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들이 연기 앙상블을 펼친다. 어어부 밴드의 장영규가 맡는 음악이 극의 분위기를 더욱 살린다. 17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화~금 7시 30분, 토 3시 7시 30분, 일 4시. (02)747-1010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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