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조였던 허리띠를 풀고 있는 징후가 일부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경기회복 속도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승용차와 가전제품이 최근 들어 잘 나가고, 신용카드 사용액도 크게 증가했다. 길거리 경기의 시금석이라 할 수 있는 남성복 판매도 크게 늘었고, 그 색상도 밝아지고 있다. 올들어 상장종목 2개중 1개가 2배 이상 주가가 올라 주식 투자자들의 씀씀이도 늘어나는 것 같다.
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3ㆍ4분기 승용차와 TV, 컴퓨터 등의 소비가 살아나면서 내구재 소비증가율이 3년 반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작년 3ㆍ4분기보다 7.5% 증가했는데, 2002년 1ㆍ4분기(21.9%) 이후 최고다. 내구재는 의류와 같은 준내구재나 생필품과 같은 비내구재보다 경기에 민감하다.
굳이 새 것을 안 사도 큰 불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구재는 경기하강기에는 가장 먼저 소비가 줄고, 상승기에는 급격히 늘어나는 특징이 있다.
신용카드 사용액(신용판매 기준)도 급증하고 있다. 11월 월간 사용액이 2003년 1월 이후 처음으로 17조원을 넘어섰다. 내년부터 신용카드 소득공제율이 줄어들기 때문에 올해 더 많은 혜택을 받기 위해 카드 사용액을 늘린 탓도 있지만, 어쨌든 신용카드를 그을 수 있는 가계의 여력이 높아진 것이 기본적인 이유이다.
남성복 등 의류 판매도 늘고 있다. 9월 이후 백화점마다 남성복은 7~16%, 전체 의류도 5~8%씩 늘고 있다. 남성복 매출동향은 월급쟁이들의 살림살이와 기대심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체감 지표이다. 의류업계에서는 지난 수년 동안 극도의 침체를 보였던 의류 소비가 내년에는 10% 정도 더 늘어날 거라고 전망하고 있다.
과연 소비 회복이 본궤도에 진입한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전문가들 사이에 견해가 엇갈리지만 대세는 ‘기신기신 회복하고 있는 정도’라는 것.
삼성경제연구소가 낙관론의 선봉에 있는데, 내년 성장률 4.8%에 민간소비증가율을 4.9%로 제시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의 3.6%(민간소비)에 비하면 1.3%포인트 높은 것. 삼성경제연구소는 주택담보대출 증가폭이 둔화하면서 소비여력이 늘고 있고, 취업자 수 증가 등 고용상황도 개선되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특히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소비감소 효과가 크지 않은데 반해 주가 상승에 따른 소비증대 효과는 클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주가가 1% 오르면 민간소비는 0.06%포인트 증가한다는 분석이다.
윗목이 따뜻해지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지만, 온 방안으로 파급될 정도는 아니라는 견해가 더 많다. 비내구재 소비의 증가는 지난 2년 여 동안 억눌렸던 교체수요가 나타났을 뿐이라는 지적. 어차피 바꿀 때가 됐던 승용차와 가전제품을 참고 있다가 경기 회복조짐이 보이자 교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계청 산업활동동향의 내구재 소비 증가율이 8월 10.1%에서 9월 –0.8%, 10월 0.9% 등으로 줄고 있어 이제 바꿀 사람은 다 바꾼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송태정 부연구위원은 “본격적인 소비 증대를 위해서는 소득이 크게 늘어야 하지만, 이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주가가 상승하고 있지만 내국인 비중이 높지 않은데다 펀드에 묶여 있고, 실질국민소득(GNI)는 3분기째 0%대이다. 최근 소비 회복의 몇 가지 징조도 완만한 회복세를 보여주는 일부 지표에 불과하지, 소비회복 본궤도 진입을 보여주는 징후는 아니라는 얘기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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