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레드포드와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영화 ‘대통령의 사람들’에서 익명의 제보자 ‘딥 스로트’(Deep Throat)는 제법 신비하게 묘사된다. 그가 깊은 밤 으슥한 곳에서 워싱턴포스트의 젊은 기자에게 ‘워터게이트 사건’ 관련 정보를 넘기는 장면은 스파이 영화에서 흔히 보는 모습이다.
그런 신비스러움은 6월 마크 펠트 전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이 30년 만에 자신이 ‘딥 스로트’였다고 밝히면서 사라졌다. 대신 FBI 국장 승진 탈락이 제보의 동기였고, 이번에도 돈이 필요해서 신분 공개를 결정했다는 설명만 칙칙하게 남았다.
■언론사에서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는 세계적 대특종이자,탐사보도의 기념비적 성과로 평가돼 왔다. 물론 내부 제보자에 의존한 이 보도가 진정한 탐사보도의 귀감으로 평가될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은 제기돼 왔다. 펠트의 폭로는 이런 의문에 힘을 보탰다.
그렇지만 ‘대통령의 사람들’이 애써 부각한,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의 진실을 향한 열정과 용기는 손상되지 않았다. 그 이후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이 소급적 정당화 효과를 가지기도 했지만 사건 당시 치밀한 확인 노력을 빠뜨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펠트의 폭로는 언론계의 오랜 상식을 확인시키는 것이었다. 대특종의 실마리는 취재 대상인 조직의 내부에서 흘러 나오며, 조직 내부의 갈등으로 불이익을 받은 사람이 으레 제보자가 된다.
또 이처럼 정치적 이해 고려에서 나온 제보가 출발점이기 때문에, 언뜻 거악(巨惡)과의 싸움에서 진실이 승리한 결과인 것처럼 보이는 대특종도 결과적으로 특정 세력의 정치적 이해에 봉사하게 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런 위험성을 줄이고, 극단적 상대화가 가져 올 진실 추구 노력의 평가절하를 막아 주는 것은 결국 제보를 받고, 이를 처리하는 기자의 양식이다.
■MBC ‘PD수첩’이 황우석 교수팀의 인간 복제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강한 의문을 품었던 것도 내부자의 제보가 실마리였다. 이미 익명 상태는 아닌 듯한 그 제보자와 펠트 사이에는 커다란 질적 차이가 존재한다. 펠트는 촘촘한 정보망을 장악한 직접 당사자여서 그의 제보는 그 자체로 상당한 신뢰성을 띤다.
반면 황 교수팀 내부에서 그런 사람을 찾는다면 안규리 박사 정도인데 현재 거론되는 제보자와는 거리가 멀다. 이런 질적 차이를 간과한 것이 ‘PD수첩’의 불행이자 한계가 아니었을까.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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