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가까이 병상에 누워있다 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그렸어요. 어쩌면 죄책감 일지도 모르지요.”
이영조(37)씨가 ‘익명인’이라는 제목으로 ‘뒷모습 작업’을 하기 시작한 것은 9년 전부터. 고1때 아버지가 교통사고 당하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길바닥에 흥건히 고인 피는 그 후 오랫동안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3차례에 걸쳐 뇌수술을 했지만 거동을 하지 못해 늘 누워계셔야만 했다. 엄해서 무섭고, 그래서 어렵기만 했던 아버지는 돌봐드려야 하는 존재가 됐다. 아버지와 그의 관계는 그렇게 10년을 보낸 후 끝이 났다. 돌아가시자 아쉬움과 죄책감, 그리움이 한꺼번에 그를 괴롭혔다.
어느날 그는 길에서 아버지와 뒷모습이 닮은 남자를 보게 된다. 소름 돋을 정도로 걸음걸이까지 비슷해 한동안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를 쫓아갔다. 그 때부터 그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함께 한 좋은 기억이라곤 어릴 때 딱 한번 자전거를 태워준 것 뿐이었는데 참 신기하지요? 해가 지날수록 이렇게 더 생각나니 말이지요.”
작업을 하면 해소될 줄 알았던 그리움은 오히려 더욱 깊어지고 커졌다. 그 그리움을 이겨내기 위해 수다 떠는 할머니, 우산 쓴 젊은 여자, 양복 입은 남자, 교복 입은 소녀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그렸다. 흑백으로 그려진 그들의 뒷모습에선 하나같이 외로움이나 슬픔 같은 게 묻어난다. 단순히 뒷모습이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그는 이제 새 작업을 할 참이다. 이미 정해놓은 다음 주제는 인간과 자연의 친화다.
“이제 밝은 그림을 그리려고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이제 가슴속에 묻어야지요. 산뜻한 색깔도 들어가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담으려고 합니다. 뒷모습 작업이요? 또 필(feel) 받으면 해야지요.”
올해 ‘제5회 송은미술대전’에서 지원상을 수상한 이씨는 내년에는 7월26일부터 일주일간 일본 요큐하마 뱅크아트 스튜디오NYK 초청전이 잡혀있다. 이번 전시는 서울 종로구 견지동 목인갤러리에서 6일까지. (02)722-5055
조윤정기자 yjc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