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올해에도 법정기한(2일) 안에 새해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예산안 의결을 위해 이날 오후 잡혀 있던 국회 본회의는 자동 유예됐다. 헌법 제54조 2항은 정부와 지자체의 효율적 예산 편성, 집행을 위해 다음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인 12월 2일까지 국회가 예산안을 의결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국회가 위헌을 저지른 셈이지만, 워낙 연례 행사가 돼버려 여야 어느 쪽도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중증 불감증이다. 국회가 1996년 이후 지난 10년간 처리시한을 지킨 건 대선이 있던 97년과 2002년 뿐이다. 대선 올인을 위해 모든 안건을 재빨리 처리하고 정기국회를 11월에 사실상 폐회했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의 예산안 심의는 상임위별 계수조정 심의도 끝내지 못한 상태다. 앞으로 감액ㆍ증액ㆍ기금안 심사와 2차 심사, 상임위와 본회의 의결까지 마치려면 적어도 2주 이상이 필요할 전망이어서 정기국회 회기(9일) 내 처리도 불투명하다. 최근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은 의원들 전원에게 이 메일을 보내 처리시한 준수를 읍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야는 “네 탓” 타령을 했다. 우리당 전병헌 대변인은 이날 “한나라당이 예산안을 볼모로 정치적 흥정을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고,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은 “정부ㆍ여당이 경제사정을 고려치 않고 적자예산 편성을 당연시했기 때문”이라고 손가락질 했다. 이 대변인은 “헌법 54조 2항은 (지키도록 노력하도록 권고하는) 경과 규정일 뿐”이라고도 했다.
이 같은 현상이 반복되는 이유 중 하나는 예산 심의기간이 짧다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의 심의 기간은 각각 240일과 120일이다. 예결위 상시 개설과 상임위화 주장 등이 해마다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고려대 함성득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의 예산안 국회제출 시기를 현행 회개연도 90일 전에서 120일 전으로 바꾸어 심사기간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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