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로 옮겨 놓은 50여 그루의 시퍼런 대나무에서 뿜어 내는 기운이 극장 밖 남산의 수풀과 어우러져 심상찮은 음기를 자아낸다. 멀지 않은 서울예대 정년 퇴임을 앞두고, 드라마센터와 맺은 30년 인연을 또 하나의 신작으로 띄워 올린 노장의 결기가 푸릇하다. 극작ㆍ연출가 오태석씨의 신작 ‘용호상박’.
경북 포항시 강사리에 전해 오는 범굿에서 모티브를 따 와, 지금도 한국인의 삶에 깊이 관여하고 주재하는 전통 신앙의 실상을 펼쳐 놓았다. 온갖 사설과 재담이 두둥실 솟아오르면, 오방색으로 오밀조밀 꾸며낸 볼거리들이 무대를 공그린다.
풍어를 기원하는 굿을 준비하다 천연덕스럽게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장면까지 나오는 이 작품은 전통의 틀 속에서 동시대인들에게 삼투해야 함을 간단없이 실천해 온 오씨의 연극적 전략을 새삼 상기시킨다. “옛날 일 끝내고 사랑방에 둘러앉아 입심 좋은 놈한테 밤새 이야기 듣는다고 치면 되죠.” 그러고 보니 무대는 산수와 동물이 어우러진 십장생도 병풍 속에서 펼쳐지는 정경이다.
무대 맨 앞 부분의 아래에는 사람이 들어갈 공간을 마련해 갈매기 인형에 날갯짓을 시킨다. 장닭 머리를 흉내낸 모자를 쓰고 제사 판에 끌려 나온 닭을 연기하는 배우, 흰 범을 흉내내는 여섯 배우의 일사분란한 움직임 등은 노장이 이 시대 젊은 관객들에게 베푸는 친절인 셈이다. 4ㆍ4조를 기본으로 했던 오씨의 대사가 현재의 어투로 대체된 것 역시 변화다.
생나무를 그대로 옮겨와 무대에다 숲을 만든 사실성은 오씨의 기존작들에 비추면 생경하기까지 하다. 허드레 천 조각 하나까지 고유 문화의 상징적 함의를 고려해 전략적으로 배치해 온 그 아닌가. “대나무란 하나의 관념이에요. 여기서 범굿, 바다, 어부들로 확대되는 출발점에 있는 하나의 기호(記號)죠.
커다란 병풍을 둘렀다고 생각하세요.” 그 속에서 배우들은 징, 물허벅 등을 펼쳐놓고 용왕 앞에서 푸지게 논다. 영국 런던의 미들섹스대에서 연극을 공부중인 오씨의 팬, 폴 매튜스(28ㆍ라트 어린이극장 배우)씨는 “목화 단원들이 보여주는 탁월한 연기 앙상블을 다시 확인하는 무대”라고 말했다.
이 무대는 극작ㆍ연출가 오태석(65ㆍ사진)씨가 배우 전무송ㆍ이호재(64)와 맺어 온 우정의 결과이기도 하다. 3인의 연극적 태(胎)였던 서울예대(당시 연극아카데미)에서 ‘초분’ 등 일련의 명무대를 남겼던 기억을 위해 이들이 한 무대에 모인 것은 30년만의 일이다. 두 사람은 여기서 각각 마을 노인으로, 산신령으로 분해 관록의 연기를 확인시킨다.
오씨는 지금도 마음에 차지 않는 곳은 고치고 연기를 지도해 가고 있다. “옛날 할매들이 툭하면 강조했던 형제간의 우애일수도 있고, 마을에 축사(逐邪)하던 범일 수도 있고…. ” 굿판의 신기(神氣)가 재담과 볼거리와 어우러진 그의 새 무대는 또 하나의 집단 무의식을 향해 현재 진행형으로 가고 있다.
그의 정년 퇴임은 2006년 2월이다. 정진각 황정민 조은아 등 출연. 12월7일까지 남산 드라마센터. 화~금 오후 7시30분, 토 4시30분 7시30분, 일 3시 6시. (02)745-3966
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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