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팩트(fact·사실)의 힘을 믿는다. 시각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으나 상식적 추론에 바탕한 사실은 결국 진실을 향한다. 기자로서의 신념이다.
“나의 가치관과 달라도 사실 자체를 간과하거나 꿰맞추지 않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과학은 이 신념에 잘 맞아떨어졌다. 실험에 의한 증거를 좇는 과학자는 법칙을 알아내고, 진실을 향하며, 그래서 힘이 있다. 이를 지켜보는 것은 과학기자의 즐거움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회의가 든 때는 없었다.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팀의 난자 출처 의혹은 황 교수 자신이 기자회견을 할 때까지 어느 누구도 ‘사실’을 밝히지 않아 1년 반 동안 의혹을 키웠다.
그러더니 이젠 더 큰 혼란이 일고 있다. 세계의 자랑거리였던 황 교수의 배아줄기세포가 가짜일지 모른다는 MBC ‘PD수첩’의 의혹은 처음 ‘황당한 음해’에서 ‘뭔가 이상하다’로, 다시 ‘일부 문제 있음’으로 확대됐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정말 가짜냐”는 생각마저 할지 모른다.
이 모든 혼란은 확실하고 단순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실(DNA 분석)을 놓고 숨바꼭질을 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학자이고 의사이며 교수다. 사회가 중심을 못 잡을 때 내가 기대어 기사를 썼던 이들이다. 보안문 안에서 전화를 피하고 입을 다물거나 “검증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모습이어선 안 된다.
“진실을 밝히는 데 이토록 많은 장애물이 있는 상황에서 어떤 윤리적 위반행위가 있었는지 어떻게 확인하겠느냐”는 영국 과학저널 네이처 사설을 단순한 해코지로 봐야 할까. 나는 결코 황 교수팀의 연구 성과가 허위라고 믿고 싶지 않다. 그러나 믿기 위해서는 팩트가 필요하다.
산업부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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