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간의 532km 국토종주동안 에이스끼리의 치열한 레이스를 수 차례 거쳐야만 ‘별중의 별’에 등극할 수 있는 대역전경주 MVP. 그래서 하늘이 내려준다고 했던가.
경상도를 지나 대전에 입성한 제51회 부산-서울대역전경주대회 나흘째인 1일 제4구간(김천-대전 88.3km) 2소구간(직지사-추풍령 10.4km)에서 사실상의 MVP 레이스가 펼쳐졌다. 전날 이봉주(충남)와의 경쟁에서 이긴 충북의 허장규(삼성전자), 2연승을 거둔 신예인 서울의 서행준(배문고), 역시 2연승의 이명승(삼성전자)이 구름도 쉬어가는 추풍령에서 대접전을 벌였다. 중장거리 1인자인 허장규의 우세 전망과 달리 도로경기에 강한 면모를 지닌 이명승은 소구간 타이기록(32분05초)을 세우며 허장규를 23초나 앞서는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고 대회 MVP 경쟁에서 가장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팀 레이스에서 경기의 돌풍이 대회 내내 계속될 조짐인 가운데 8연패를 노리는 충북이 저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경기는 이날 대전 입성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각오로 나선 충청맹주 충북과 치열한 접전 끝에 9개 소구간중 4개 소구간에서 1위에 오르는 활약에 힘입어 충북을 3분 여차 따돌린 4시간34분50초로 4일 연속 대구간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종합기록에서도 경기는 충북을 12분 여차까지 벌린 15시간44분12초를 기록, 1987년 이후 18년만의 우승을 눈앞에 두게 됐다. 전날 3위에 머물렀던 충북은 구간은 물론 종합기록에서도 서울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서 막판 역전우승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서울과 경북은 대구간 기록과 종합기록에서 각각 3, 4위를 차지했다. 6위 대전은 이날 마지막 소구간(세천-대전 7.9km)에서 에이스 안창훈(조폐공사)을 내세워 선두로 골인, 홈 레이스에서 체면을 세웠다.
대전=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 역전스타/ 나흘째 질주 이봉주
“예전에는 팍팍 내질렀는데 마음먹은 대로 속도가 나질 않네요”
2002년 이후 3년 만에 대역전경주대회에 출전한 한국마라톤의 대들보 이봉주(35ㆍ삼성전자)가 후배들의 선전에 연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마라톤 한국기록 보유자에다 대역전경주대회에서만 1990년 첫 출전이후 두 차례 MVP에 올랐던 이봉주지만 이틀째 6소구간에서 1위를 차지했을 뿐 1일 추풍령구간을 포함, 3개 소구간에서 내리 3위에 그치는 부진을 보였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그이기에 자존심이 크게 상할 만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나흘 내내 달렸고, 2일 고향 충남 천안의 입성구간에서 만큼은 꼭 선두로 들어갈 각오다. 4일 연속출장선수는 120명 중 불과 4명. 이름값으로 보면 헌신적인 질주나 다름없다.
“스피드 훈련으로 생각하고 편한 마음으로 뛰고 있다”는 이봉주는 “나와의 경쟁을 통해 후배들이 경험을 쌓고 기가 살아나는 게 기분이 좋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가 있어 ‘한국마라톤의 산실’이라는 대역전경주대회의 의미가 더욱 살아나고 있었다.
마라톤에서는 여전히 그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이봉주는 “고된 훈련을 이겨내는 후배들의 정신력이 예전만 못해 마라톤이 다소 침체에 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후배들로부터 실력은 물론 마음으로부터 존경 받는 대선배인 그가 놓은 일침이었다.
대전=정진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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