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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여행 - 육지 속 孤島 - 강원 양구 펀치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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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여행 - 육지 속 孤島 - 강원 양구 펀치볼

입력
2005.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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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소양호 건설 이후 육지속 고도(孤島)로 남은 강원도 양구. 15년 전 기자가 군 생활을 했던 곳입니다. 춘천의 보충대에서 명(命)을 받은 자대까지, 소양호 물길을 한참 가로 질러 갔습니다. 어떤 곳이길래 길도 없어 배를 타고 가야 하나. 신병들은 겁에 질려 잔뜩 주눅 들었습니다.

높은 산들이 첩첩이 감싼 것만으로도 모자라 파로호와 소양호가 또 물길로 경계 짓는 양구. 젊음의 30개월 가슴을 마르게 했던 고립의 땅이었습니다. ‘군에 다시 끌려가는 악몽’도 먼 기억이 돼버린 지금, 홀가분하게 양구를 다시 찾았습니다.

새벽녘 춘천을 지났습니다. 호반의 도시를 감싼 희뿌연 안개를 뚫고 달리는 길. 양구로 향하는 길은 하얀 장막에 가려져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낼 뿐입니다. 소양호를 스치고 양구읍을 지나 31번 국도를 타고 북으로 북으로 올랐습니다. 먼 발치로 지나친 예전 근무지도 평온해 보이더군요.

팔랑리에서 갈아탄 453번 지방도로는 이내 구불구불 산을 오릅니다. 도솔산(1,148m) 자락을 비행기에 올라 탄 듯 휘어 감고 가는 이 고개를 돌산령이라 합니다. 험한 고갯길 응달진 곳은 미끄럽습니다.

눈이 안 내려도 얼어 붙은 아침 안개때문에 종종 빙판길 사고가 나는 곳입니다. 고개 꼭대기 군부대 앞을 지나 내리막에 접어드니 드디어 ‘펀치볼(Punch Bowl)’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행정 구역으로는 양구군 해안(亥安)면 해안분지 마을이죠. 도솔산을 비롯해 대우산(1,178m), 가칠봉(1,242m), 대암산(1,304m) 등 1,000m 가 넘는 고봉들에 둘러 싸인 아늑한 마을입니다. 먼저 한 가지, 도통 강원도 산골짜기와 어울리지 않는 펀치볼이란 이름은 어떻게 붙은 걸까요.

실은 한국 전쟁에 참전한 종군 기자가 이 곳을 보고는 지형이 화채 그릇을 닮았다고 해서 처음 불렀다죠. 성벽이 필요 없는 천연 요새이다 보니 남과 북 모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거점이었습니다. 엄청난 피를 부른, 한국전쟁에서 손꼽는 격전지입니다.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민통선’ 안쪽의 유일한 면 소재지로 다른 곳과 달리 일반의 출입이 자유롭습니다. 보기엔 그저 평온해보이기만 한 곳이지만 50여년 전엔 도솔산 전투, 피의 능선 전투 등으로 피비린내가 진동했던 곳입니다. 차별 침식에 의해 생긴 이 분지를 많은 이들이 당시 쏟아 부은 포탄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 잘못 생각하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

“일천구백오십일년 유월부터 십이월 말까지/도솔산, 대우산, 백석산, 가칠봉/피의 능선에서 단장의 능선에서/펀치볼 분지에서 이름 모를 고지에서/죽거나 실종된 군인들만 이만팔천삼백여명.” 해안면의 전쟁기념관 입구에 적힌 글귀입니다. 지금의 평화를 위해 바쳐진 목숨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곳을 가리켜 ‘주민보다 군인이, 산 군인보다 죽은 군인이 더 많은 땅’이라고 합니다.

펀치볼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가칠봉 능선의 을지전망대입니다. DMZ 안에 있는 곳으로 군사 분계선에서 불과 1km밖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남으로는 펀치볼과 해안면 일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고 등을 돌리면 북녘의 산하가 꿈처럼 펼쳐집니다. 날씨만 허락한다면 금강산의 비로봉, 차일봉, 월출봉, 미륵봉, 일출봉의 절경을 또렷하게 볼 수 있습니다. 금강산까지 거리가 불과 36km입니다.

을지전망대에 가기 위해선 해안면 후리의 양구통일관을 들러야 합니다. 신분증을 제시하고 방문 신청서를 작성하고는 성인 1인당 2,500원의 입장료를 내면 됩니다.

차량은 주차료 명목으로 2,000원씩을 받습니다. 입장권 한 장으로 을지전망대는 물론, 통일관 옆의 전쟁기념관과 제 4땅굴까지 함께 관람할 수 있습니다. 월요일만 휴관합니다.

양구는 박수근 화백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그가 태어난 양구읍 정림리에 박수근 미술관이 있습니다. 2001년에 지어진 건물은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죠.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작으로도 선정됐던 곳입니다. 양구군청 문화관광과 (033)480-22511, 양구통일관 (033)480-2674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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