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끌려가면 우리가, 이 사회가 벼랑 끝에 서게 될 것이라는 공포심으로 이 소설을 썼습니다. 그러니 이 책은 지난 70년대 우리사회의 벼랑 끝에 세운 제 나름의 안내 표지판이었던 거죠.”
한 난쟁이 가족의 참혹한 삶을 통해 70년대 말 도시 빈민과 노동자들의 고통을, 자본과 권력의 비정한 폭력을 고발한 조세희(63)씨의 연작장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줄여 ‘난쏘공’, 이성과힘 발행)’이 1978년 1판 1쇄를 낸 지 27년 만에 통산 5판 200쇄를 냈다.
1일 서울 대학로의 작은 음식점에서 가진 조촐한 출판기념회에서 그는 “이게 자랑할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직 제 소설이 낡지 않았다면, 30년이 지난 지금도 필요한 이야기라면, 벼랑 끝 표지로서의 이 책의 기능이 아직 유효하다는 의미죠. 200쇄를 이어 오늘에 이른 것은, 어쩌면 욕된 일일지 모릅니다.”
그는 첫 책을 들고 고(故) 김현 씨가 했다는 말- 책이 좋아. 8,000부는 나갈 거야. 3쇄는 찍어야지-을 전하며, “그도 나도 틀렸다”고 말했다.
“난쏘공은 지난 시절의 기록입니다. 그 이후로 세상을 넓게 보고 자유롭게 다른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이 사회가 나를 놔주지 않았어요. 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저는 그 때나 지금이나 제3세계의 작가로서 시대에 묶여 있습니다.”
작가는 감회에 젖은 듯, 책을 펼쳐 한 대목을 읽었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난쏘공’의 서두부분)
“11월15일 농민시위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있었습니다. 경찰의 물대포와 진압봉과 방패의 힘은 막강했고, 잇닿아 선 경찰버스는 조선시대의 성(城)처럼 굳건했죠. 그들은 분노한 농민들과 싸워 이겼습니다. 외세에 이겨본 적 없는 조선의 관군이 백성과의 전쟁에서는 연승을 거뒀듯 말이지요.”
그는 어떤 대목은 울면서 썼고, 또 어떤 대목은 분노하며 썼다고 했다.
-아버지가 꿈꾼 세상은 모두에게 할 일을 주고, 일한 대가로 먹고 입고, 누구나 다 자식을 공부시키며 이웃을 사랑하는 세계였다.… 아버지가 꿈꾼 세상에서 강요되는 것은 사랑이다.…(‘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서두부분)
사북 탄광촌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담은 사진 산문집(‘침묵의 뿌리’)을 낸 바 있는 그는, 요즘도 카메라를 들고 시위 현장을 누빈다.
“분노한 민중들의 호흡과 신음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듣기 위해서”, “흔들리고 찢기고 피 흘리는 순간들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그는 그 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그건 결코 과장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 찢김과 피흘림의 길이 난쟁이 아버지가 꿈꾼 그 사랑 세상을 향한 몸부림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난쏘공’을 쓰던 시절에도 희망은 있었다고 말했다. “나침반도 지도도 없이 캄캄한 밀림 속을 헤매지만, 끝내는 빛의 개활지를 맞이할 것이라는 희망이요. 세상이 밝아진다면 제 소설이 잊힐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는 더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렸으나, 끝내 말의 끝을 맺지 않았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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