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1일 발족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8ㆍ15 경축사에서 제안한 지 1년 반만이다. 국회 입법 과정에서부터 여야간 논란을 거듭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출범하게 된 과거사위는 앞으로 4면, 길면 6년 동안 굴절된 우리 현대사의 각종 사건을 총체적으로 규명하게 된다.
과거사 정리에 대한 요구는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피해자와 유족들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제주 4ㆍ3 사건, 거창 사건, 노근리 사건 등 묻혀졌던 사건이 터져 나올 때마다 위원회가 하나씩 생겼다.
이번 과거사위까지 포함하면 과거사 관련위원회만도 모두 8개다. 지나치게 과거지향적이라는 지적도 나오지만, 그만큼 과거사가 정리되지 않았다는 반증이자 정리의 필요성도 크다고 볼 수 있다.
과거사위는 이 같은 과거사 정리기구의 결정판인 셈이다.
조사대상은 일제강점기의 항일독립운동 및 해외동포사,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권위주의 통치기의 인권침해ㆍ조작의혹사건ㆍ의문사 등으로 현대사의 거의 모든 영역을 아우른다. 피해자의 신청 뿐만 아니라 위원회 직권으로도 조사에 착수할 있어 운신의 폭도 넓다.
과거사위는 조사 대상자와 참고인에게 진술서 및 관련자료 제출, 위원회 출석 등을 요구할 수 있으며 3회 이상 불응한 사람에게는 동행명령까지 내릴 수 있다.
과거사위는 이와 함께 과거 조사를 바탕으로 사면복권 건의 등 명예회복 조치도 취하게 된다. 특히 당정이 30일 ‘국가의 민사상 시효이익을 포기하는 특별법’을 제정키로 해 부당한 국가공권력에 의한 피해자들이 시효와 상관없이 국가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도 열어놓았다. 과거사위가 피해자 보상에 대한 논의도 담당할 것으로 보여 그야말로 과거사의 총체적 정리를 맡게 된다.
그러나 난제도 만만치 않다. 특히 과거사를 보는 진보ㆍ보수세력의 시각차가 커 조사대상 선정에서부터 격론이 벌어질 전망이다. 입법 과정에서도 논란이 돼 좌우 균형을 맞추겠다는 취지로 조사대상 범위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에 의한 테러ㆍ인권유린ㆍ 폭력’ 등도 포함됐다.
진보적 위원들은 주로 공권력 피해에 초첨을 맞춘다면, 보수 위원들은 주사파 등의 좌익공안 사건을 도마에 올릴 것으로 관측된다.
사무처도 도마에 오를 수 있다. 과거사위는 총 정원 180명 중 부처 파견 공무원 50명 외에 별정직 공무원 70명을 민간에서 채용할 계획인데, 역사관련 시민단체 인사들이 대거 기용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군, 경찰 등에 설치된 자체 과거사위원회와의 관계도 조정이 필요한 대목이다. 현재는 ‘필요할 경우 상호 협의, 조정한다’는 규정만 있어 자칫 ‘중복 조사’ ‘행정 낭비’라는 논란을 촉발할 소지가 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 진실규명 신청 어떻게
과거사정리위원회 진실규명 신청기간은 1일부터 내년 11월30일까지 1년간이다. 신청은 신청자 주소지 관할 시, 군, 구청이나 시, 도 또는 서울에 있는 과거사 정리위원회를 직접 방문하거나 우편 등을 통해 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자치단체에서 신청할 경우 민원실이나 자치행정과 등에 마련된 창구를 이용하면 되고 진실규명 신청에 대한 안내문이 민원실에 게재된다.
진실규명 신청은 진실규명 사건의 범위에 해당하는 희생자나 피해자, 이들의 유가족, 피해자나 유족과 8촌 이내의 혈족이거나 4촌 이내의 인척 및 배우자가 할 수 있다.
진실규명 사건을 경험했거나 목격한 자이거나 이를 경험 또는 목격한 자로부터 직접 전해들은 자가 개별 또는 단체로 신청할 수도 있다. 단체로 신청할 때는 대표자를 선정해 신청하면 된다.
신청접수는 접수처에 마련된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되며 신분확인을 위한 증명서나 서류는 필요없다. 우편으로 접수할 때는 각 자치단체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서식을 다운받아 출력, 자치단체 민원실이나 과거사 정리위원회(서울시 중구 필동1가 매경미디어센터 2층)로 보내면 된다.
신청된 진실규명 사건은 위원회에 접수된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조사, 기각 여부가 결정돼 신청자에게 통보되며 사건에 대한 위원회의 조사가 마무리 되면 피해자 개인에 대한 화해, 명예회복, 보상 등의 절차를 밟게 된다
된다.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 과거사委 위원 15명중 여권 추천이 8명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 15명은 청와대, 여야 정당, 대법원 등의 추천을 맏아 구성됐다. 대통령과 열린 우리당이 각각 4명을 추천, 여권 추천위원이 과반수인 8명이며 대부분 진보적 성향이다.
한나라당 추천위원은 3명이고, 민주당 몫이 1명, 대법원은 3명이다. 이런 인적 구성을 놓고 일각에서는 "위원회의 과거사 해석이 왼쪽으로 편향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위원장인 송기인 신부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로 통한다. 1970년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창립 맴버였고, 부산지역에서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재야세력의 대부다. 송 신부는 4월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 "나는 10년전부터 친일문제에 관심을 쏟고있다"면서 "기득권자, 친일분자들이 요소요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고 밝혀 청산에 무게를 실었다.
청와대 추천 위원인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진보적 사회학자다. 하지만 김교수는 지난해 11월 한 포럼에서 "처벌보다는 진상규명을 통한 국민적 교육효과가 더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안병욱 교수와 김갑배 변호사는 국정원 과거사진실규명위 위원으로 활동하며 박정희 정권에 의한 정수장학회 강제헌납사건 등을 밝혀냈다. 안 교수는 일제식민시대 유산, 한국전 민간인 학살, 민주화인사에 대한 국가폭력을 과거사 규명대상으로 꼽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 추천 위원인 박준선 변호사는 지난해 노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국회쪽 소추위원으로 참여했던 인물이다. 이영조 경희대 교수도 17대 총선에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던 경험이 있고, 보수성향의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사무총장을 지냈다.
때문에 과거사 해석, 처리 방향을 놓고 위원들간 시각차와 격론이 예상된다.
정상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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