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일은 동학이 천도교로 이름을 바꾸어 새롭게 도를 드러낸 현도(顯道) 100주년 기념일. 그러나 천도교는 우리 근대사에 굵은 족적을 남긴 대표적 민족종교 임에도 불구, 현 신도수가 10만을 크게 밑돌 정도로 교세가 쇠락해 있다.
천도교 한광도(韓廣道ㆍ70) 교령은 천도교를 새롭게 일으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_ 먼저 천도교의 기본 이념이라면.
“시천주(侍天主), 곧 하느님을 내 마음에 모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곧 하느님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인간을 소중한 존재로 여기는 것이지요. 천도교는 기복, 내세신앙이 아니라 지금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자는 겁니다. 그러자면 서로 헐뜯지 않고 평화롭게 지내야겠지요.”
_ 천도교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해주십시오.
“동학의 역사는 핍박사입니다. 사람은 다 같다는 주장이 반상의 차별을 두는 조선의 이념에 어긋났기 때문이지요. 1860년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와 2세 교조 최시형이 처형됐습니다. 동학혁명으로 교도 40만명이 숨졌고요. 이후 동학교도 이용구의 매국 선언으로 친일단체로 매도될 위기에 처합니다. 그래서 1905년 12월1일 명칭을 바꾸어 전근대적 신앙공동체에서 근대적 종교체제로의 전환을 알렸습니다.”
_ 천도교는 3ㆍ1운동을 주도하는 등 큰 영향을 끼쳤는데.
“3세 교조 손병희 선생이 귀국한 1906년 1월 당시 교인이 300만명이었습니다. 30여개 학교를 운영 또는 후원했고 만세보 등 신문과 잡지를 발행했으며, 농민운동도 활발하게 이끌었지요. 이 때문에 일제 탄압으로 경상 전라 충청도 등지의 기반이 무너지고 중심지가 북부로 옮겨갔는데, 분단으로 결국 교세가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_ 천도교는 남북교류에 적극적이었습니다. 현도 100년 이후의 계획은.
“해방 직후에도 통일정부 수립을 지지하는 등 분단을 막으려 노력했고, 지금도 남북이 공존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천도교 계열의 청우당이 있어 대화도 잘되는 편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외형보다는 내실 다지기에 주력할 것입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용 경전을 만드는 등 국민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방안도 모색 중입니다.”
사진=배우한기자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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