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수학능력시험장이나 취업시험장, 행정관서 민원창구 등에서 종종 증명사진 속 얼굴이 실제 모습과 너무 달라 실랑이가 벌어진다. 디지털 세대인 젊은이들이 디지털 사진을 컴퓨터프로그램을 이용해 뜯어고치면서 벌어지는 일. “멋지게 보이면 좋잖아요”라는 이들의 대수롭지 않은 설명 뒤로 ‘외모 지상주의’라는 씁쓸한 사회의 그림자가 엿보인다.
수능 시험장
23일 인천의 한 수능 시험장에 감독관으로 들어갔던 정모(30) 교사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1교시 언어영역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학생들의 신원확인을 하던 중 얼굴이 수험표 사진과 딴판인 여학생을 발견했다. 전형적인 사각턱 얼굴이었으나 사진에는 계란형으로 갸름했고, 펑퍼짐한 코도 오똑하게 날이 서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한지 부감독관도 사진과 얼굴을 다시 꼼꼼히 대조하면서 인적사항을 물어보는 것이었다.
두 감독관이 여학생에게 “사진이 실물과 왜 이렇게 다르냐”고 물었더니 여학생은 별일 다 본다는 투로 “요즘 사진관에서 원하는 대로 다 해줘요. 컴퓨터로 애들이 직접 고치기도 하는데 그것도 몰랐어요”라고 말했다. 정 교사는 “최근 몇 년간 감독관으로 들어갔던 동료교사들도 이런 경험을 한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행정관서
지난달 중순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동사무소 직원 K씨는 주민등록증을 새로 만들려고 찾아온 여대생을 돌려 보냈다. 사진과 실물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K씨는 “본인확인이 어렵다”며 여대생에게 다른 사진을 제출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여대생은 “사진을 크게 고친 것도 아닌데 뭘 이런 걸 갖고 까다롭게 구냐”며 버럭 화를 내고 돌아갔다.
K씨는 “1개월에 1,2차례는 겪는 일”이라고 말했다. 주민등록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이미지 스티커 복사사진 등 변형이 가능한 사진은 담당기관에서 보완을 지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직원들은 이 같은 규칙에 상관없이 웬만하면 그냥 주민등록증을 내주고 “이건 지나치다” 싶은 민원인에게만 다른 사진을 요구하는데도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진다고 한다.
취업시험장
기업 인사 담당자들도 ‘성형사진’에 대해 신경 쓰기는 마찬가지다. 담당자 대부분이 사진과는 전혀 다른 구직자가 면접 때 나타나 당황했던 적이 있다. 한 증권회사는 이 같은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 올해 채용 공고문에 ‘사진을 수정하지 마세요’라고 적시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구직자들이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현재 풍토는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과도한 편집’은 구직자에게 불이익이 될 수도 있다. 취업포털 커리어(www.career.co.kr)가 10월 구직자 1,6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43%가 “사진수정을 거친다”고 대답했지만 인사 담당자들의 70%는 “입사지원서에 부착한 사진과 인상이 크게 다른 경우에는 채용 시 감점이나 탈락 대상이 되는 등 불이익을 보게 된다”고 답했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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