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혁민(38ㆍ가명)씨는 병을 앓고 있다. 당뇨병처럼 쉽게 낫지 않는 만성질환이어서 생활이 약간 조심스럽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을 위해 간병활동을 하고 강연에도 나서며 자신 있는 삶을 살고 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사회의 편견과 차별”이라는 최씨의 병은 에이즈다.
“에이즈의 날(1일)을 맞아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뜻을 그에게 전하면서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조심스러움은 28일 그를 만나고 나자 이내 미안함으로 변했다. 정장을 차려 입은 말쑥한 외모의 최씨는 얼굴에 자신감이 넘쳤다. 한눈에도 무척 건강해 보였다. 그는 “에이즈 감염인이라고 하면 모두 붉은 반점에 창백한 얼굴을 떠올리지만 이는 오해”라며 웃었다.
최씨에게 에이즈 양성반응이 나타난 것은 5년 전이다. 일식집 주방장으로 일하면서 보건증을 갱신하기 위해 검사를 받았다가 감염 사실을 알게 됐다. 군 복무를 마친 20대 중반부터 동성애자로 생활해 온 것이 화근이었다. 최씨는 “혹시나 하고 걱정하기는 했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니 눈앞이 캄캄해지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았다”고 당시의 절망감을 토로했다.
더 이상 직장에 다니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수치스러워 누구에게 알릴 수도 없었다. 홀로 집에 들어앉아 술을 친구 삼아 지내는 사이 서서히 세상과 단절돼 갔다.
변해가는 아들의 모습을 걱정하는 어머니에게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냈지만 어머니는 “왜… 하필… 내 아들이…”라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흐느꼈다. “알코올 중독보다 더 괴로운 건 무지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생기는, 마치 뇌가 말라가는 듯한 심적인 고통이었습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 입원했다. 병명은 알코올성 정신질환. 에이즈 감염인이란 사실은 숨겼다. 다행히 알코올 중독은 완화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상담을 맡은 정신과 의사에게 에이즈 감염이라는 속내를 털어놓고 후련함을 느끼던 그를 병원 측은 강제로 퇴원시켰다. “감염 사실을 알았던 순간보다 더 큰 좌절과 배신감이 들었어요. 감염인을 배려하지 않는 의료기관 위주의 신상정보 공개는 문제가 있습니다.”
겨우겨우 찾은 동네의 한 개인병원에서 꾸준히 치료를 받으면서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져 면역수치가 700을 넘었다. 정상인의 1,000에는 못미치지만 감염자가 평균 200 이하인 것에 비추어 볼 때 많이 호전됐다.
최씨는 현재 대한에이즈예방협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올해 초 상담전화를 통해 인연을 맺은 후 삶에 대한 자신감이 생겨 아예 에이즈 퇴치와 예방에 앞장서기로 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직도 홀로 남겨져 고통받고 있는 감염인들에게 조언을 주고 간병활동을 하는 것은 물론, 학생들을 대상으로 에이즈 예방교육도 하고 있다.
“감염인들은 죽음에 대한 불안보다 사회에서 격리될지 모른다는 심리적인 압박감에 더 힘들어 합니다. 감염인이라고 해도 상처(혈액)나 성관계 등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전염 우려는 거의 없어요. 사회가 우리를 천형(天形)을 받은 죄인이 아니라 몸이 아픈 환자로 봐 줄 때 우리도 소중한 하나의 인생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최씨의 꿈은 다시 주방장을 하는 것이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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